경기도 화성에서 주유소를 하는 K 대표는 10일 “일자리안정자금 대상이 맞긴 한데…,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저임금 인상 대책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이 고용 현실을 고려하지 못해 수급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소상공인·자영업계의 목소리다. 일자리안정자금은 30인 미만 사업체에서 신청일 기준으로 1개월 이상 근무 중인 월급 190만 원 미만 근로자 1인당 정부가 월 13만 원을 보전해 주는 지원책이다.
K 대표가 운영하는 주유소 같은 영세 자영업종은 소수의 근로자들이 장시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19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190만 원 미만이라는 수급 기준에 미달하게 된다. 또 일자리안정자금을 수급하려면 고용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신용불량자와 은퇴자들이 많은 업종 특성상 근로자들이 보험을 기피한다는 점도 업계는 지적한다.
우선 월급 190만 원 미만 조건을 살펴보면 현행 최저임금 7530원을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6만24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기준(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 월급 157만3770원(7530원×209시간)이 된다.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근로자들이 야근, 특근 등으로 하루 2시간씩만 더 일해도 월급이 190만 원 선을 넘어 버린다. 인천에서 음식점업을 하는 P 씨는 “단기 시급 노동자를 제외하고 우리가 고용한 최저임금 근로자는 장시간 근로를 해서라도 월급을 더 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을 수급하려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도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는 버겁다. 이들이 고용하는 직원 중에서는 실업급여를 받지 않는 6개월 미만 단기 근로자나 신용불량자 등 수입 노출을 꺼리는 근로자가 많아 스스로 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부가 고용보험 가입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두루누리사업(1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부담분 국민연금·고용보험 보험료를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 등을 통해 미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병행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구인난으로 이런 근로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고용주는 여전히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자리안정자금의 한시성도 문제다. 김문식 주유소협회장은 “일자리안정자금은 한시적인 대책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많다”며 “이대로라면 매년 몇조 원을 지원해야 하는 문제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왕에서 압출·사출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M 씨도 “일시적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은 경쟁력에서 오명”이라고 날을 세웠다.
업계는 일자리안정자금이 아니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나 업종·지역·연령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이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라고 꾸준히 외쳐왔다. 하지만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을 통해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회견 기자회담에서 최저임금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정부가 만들어 둔 대책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이용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결국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제도개선위원회를 중심으로 차등적용이나 산입범위 등 핵심 논점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지만, 산업계와 노동계 위원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10일부로 종료됐다. 논의는 전원회의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지만 노사간 입장차가 큰 만큼 앞으로도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산업계 인사는 “우리 목소리가 너무 소수”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이제는 현실을 고려해 미만율(전체 임금근로자 중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높고 영업익이 낮은 자영업 과밀창업 업종 중심으로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며 “수요 측면에서도 정년 이후에 일하려는 고령 인력이 늘고 있고 노인 빈곤율도 증가하고 있으므로 연령별 차등적용도 검토해볼 만한 보완책”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