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청약 현장은 연일 사람들로 미어터진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내년 전국 주택 매매·전세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걸까? 집값이 어찌 될지 속 시원히 짚어주는 족집게 예언은 불가능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힌트가 보인다. 지방은 하락해도 수도권은 보합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는 점이다. 수도권에서도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이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을 예상했다. 경기도민들, 긴장하시라.
궁금증① 갑론을박 서울 집값, 누구 말이 맞나
들으면 열 받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사대주의(事大主義) 근성에다 평균의 오류도 숨어 있어 심기가 불편하지만, 남의 나라와 숫자로 비교하는 방법은 널리 쓰이니 한번 따라해 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서울의 연간 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10.3배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9.3배, 영국 런던의 8.5배를 넘어선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으면 선진국 사람들은 집을 사고 어쩌면 차도 한 대 뽑을 수 있지만, 서울시민은 여전히 허덕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목받지 못한, 어쩌면 외면하고픈 숫자가 있다.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호주 시드니는 12.2배, 캐나다 밴쿠버는 11.8배로 서울보다 높다. 중국도 묘하다. 홍콩 18.1배, 베이징 14.5배, 상하이 14.0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는 더 어지럽다. 2010년 소득 대비 집값을 100으로 봤을 때 2016년 말 한국의 수치는 86.2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은데 6년간 집값 부담이 오히려 13.8%나 낮아졌다니? 게다가 한국은 소득 대비 집값 부담이 조사 대상 32개국 중 29위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통계는 역시 믿을 게 못 되나 보다.
궁금증② 동남아만도 못한 서울 집값, 실화냐?
높은 곳을 쳐다봤으니 아래도 한번 내려다봐야 한다. 뭐든 동남아보다 못하다 하면 왠지 발끈하게 되는데, 과연 집값은 어떨까? 일단 비싼 집들을 구경해 보자.
동남아 부동산 중개 시장의 강자인 ‘iproperty’에 16일 자로 실제 올라와 있는 콘도(우리로 치면 아파트) 매물인데, 놀라지 마시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중심가 KLCC에 자리 잡은 이 아파트 가격은 15일 환율 기준으로 약 202억 원이다. 705㎡(약 214평), 방 5개짜리 집으로, 평당 1억 원에 조금 못 미친다.
이 나라에서 최고 비싼 극단적인 사례일까? 고급 주택가인 방사르(Bangsar)에 위치한 또 다른 매물, 442㎡(약 134평) 방 4개짜리 이 주택은 약 222억 원이다. 평당 1억6500만 원이 넘는다.
좌절하지 말고 평범한 중산층 아파트도 엿보자. 북쪽 주거지인 세감붓(Segambut)에 분양 중인 약 400가구 규모 아파트는 121㎡(약 37평) ~ 355㎡(약 108평)로 구성돼 있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약 2억6400만 ~ 6억9400만 원 정도이다. 싼지, 비싼지는 각자 느끼기 나름이다.
궁금증③ 내년 집값 떨어진다는데?
‘2018년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배포된 자료는 전국 주택매매 가격이 0.5% 내릴 것으로 점치고 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보합, 지방은 1.0% 하락을 예상했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37쪽짜리 연구보고서 전체를 읽어 보면 의미심장한 몇 줄이 보인다. “수도권은 서울과 외곽 지역의 온도차, 서울 주거용 부동산 안전자산 인식 강화, 기타 지방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락세, 토지·단독주택은 강세 지속”이라는 대목이 있다. “서울 주거용 부동산은 금리상승 압박과 준공 증가에도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 거래는 감소하더라도 가격은 강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여 놨다.
이쯤 되면 두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혹시 내년 부동산은 지역과 용도별로 각자 따로 놀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특히나 각종 악재에도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를 금이나 미국 달러 같은 안전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거래가 감소할 뿐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숨은 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궁금증④ 서울만 버틴다? 어떻게?
서울만 다를 것이라는 예측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 재미는 없지만 숫자놀음만큼 확실한 근거도 드무니 통계치를 활용해 볼 만하다. 기본적으로 서울은 집이 모자란다. 국토교통통계누리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2014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지금은 96%로 떨어졌다. 서울시민 100명 중 4명은 들어가 살 집이 없다는 소리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자가 점유율이다. 본인 소유 집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율을 뜻하는 이 비율은 서울의 경우 42%에 불과하다. 이는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서울 사람이 600만 명 가까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게다가 이 숫자들은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나 오피스텔, 원룸 등 모든 형태의 주택을 포괄하고 있다. ‘서울시 주택공급 현황’에 따르면 2012 ~ 2016년 서울시에서 신규 공급된 주택 35만9530가구 가운데 다세대주택이 19만339가구로 전체의 53%를 기록했다. 아파트는 43%(15만5186가구)에 그쳤다. 이 기간 1~2순위 평균 청약 경쟁률은 2.1대 1에서 22.55대 1로 치솟았다.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은 서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궁금증⑤ 전세는요?
부동산 시장은 홀수 해마다 ‘전세 대란’이 대두되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 다르다. KB국민은행의 11월 6일 기준 서울의 전세 수급지수는 137.2로 5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급 대비 수요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이 넘으면 그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이다. 즉, 서울은 여전히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인데, 2013년 9월과 2015년 3월 200에 근접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낮아진 수치다.
특히 강남의 전세 수급지수는 141.2로, 2012년 7월 2일(141.0)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경기도 입주 물량이 12만7000여 가구에 이르고 하반기에만 9만여 가구가 쏟아진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한다.
전셋값도 안정세다. 2016년 2.78% 상승했던 서울 전세가격은 올해는 9월까지 절반 정도인 1.45% 오르는 데 그쳤다.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돌아서며 전세대란이 발생하던 공식은 깨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