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트럼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을 처음으로 방문하면서 사업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북한과 무역 등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 강온전략을 펼치면서 수백 조 원에 달하는 선물 보따리를 챙긴 것이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2535억 달러(약 284조 원)에 달하는 경제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중산 중국 상무부장은 “미중 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협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시작된 트럼프의 3국 방문에 하이라이트를 찍는 순간이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미국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에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와 중국은행(BoC) 등 국영 금융기관들이 430억 달러를 투자하고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미국 퀄컴 부품을 구매하며 보잉이 370억 달러 규모의 여객기를 중국 측에 판매하는 등의 내용이 경협에 포함됐다.
이 자리에서도 협상가로서 트럼프의 면모가 발휘됐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관계가 여전히 매우 불공정하고 일방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좌중을 긴장시켰다. 이어 “그러나 나는 중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국민을 위해 다른 나라를 이용하는 국가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며 “현재의 무역 불균형은 중국에 책임이 없다. 이런 불균형이 확대되는 것을 막지 못한 과거 미국 지도자들에게 원인이 있다”고 말해 동석한 시 주석이 미소를 짓게 했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는 강경한 발언 등으로 압박해 실리를 최대한 챙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서 실제 대화에서는 파트너의 체면과 위신을 세워주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트럼프는 일본에서는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무역에 대해 직설적으로 발언하면서 아베를 압박한 것이다. 무역 문제에 대해 말을 최대한 못 꺼내게 하려는 아베 총리의 의도를 눈치채고 오히려 역으로 치고나간 것이다. 그는 일본 방문 이틀째인 6일 미일 기업가들과의 만남에서 “미일 무역은 공정하지도 호혜적이지도 않다”며 “우리는 지난 수년간 막대한 대일 무역수지 적자로 고통받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불공정한 무역관계 해소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해 아베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을 이유로 일본이 미국산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트럼프는 방일 마지막 날인 7일 트위터에 “나의 일본 방문과 아베 총리와의 우정으로 우리의 위대한 나라(미국)에 더 많은 이익이 창출됐다”며 “군수와 에너지 부문에서 막대한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주도하는 여성기업가 지원기금에 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트럼프 환심 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편 트럼프는 한국에서도 쏠쏠한 이익을 챙겼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총 748억 달러에 달하는 사업 추진과 제품·서비스 구매를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42개사가 앞으로 4년간 미국에서 총 173억 달러에 이르는 사업을 추진하며 24개사는 같은 기간 575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제품·서비스를 구매한다. 트럼프는 첨단무기 구입 약속도 덤으로 받아냈다. 한국이 북한 핵위협에 대응해 핵추진 잠수함 등 무기 구매를 추진하는 상황을 활용해 세일즈 외교를 펼친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3국 방문 성과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무역센터(ATC)의 데보라 엘름스 이사는 “미중 경협을 살펴보면 수치는 매우 크며 좋게 들린다”며 “그러나 여기에는 이전에 논의된 내용과 단지 잠재적인 딜(Deal), 실현되기 어려운 것들이 뒤섞여 있다”고 꼬집었다.
또 엘름스 이사는 “트럼프는 개인적으로는 좋게 대했다가 뒤돌아서면 즉시 태도를 바꾸는 이력을 갖고 있다”며 “그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에 대한 비판적인 우려를 포기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