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현대차의 독배(獨杯)

입력 2017-11-06 11:48 수정 2017-11-0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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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 차장

“만약에 저렇게 헛발질을 몇 번 더 해 버리면….”

꽤 오랜만에 마주앉은 경제전문가는 현대차의 최근 행보에 대해 건조한 목소리로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이제 식상해진, 그래서 관심조차 멀어진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의 ‘10조5500억 원 인수’ 이야기였습니다. 그 결정이 “최근 현대차 부진의 시작점이었다”는 말에 저 역시 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더디 가고 있습니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지자체의 분야별 심의가 길어졌기 때문인데요. 초고층 신사옥 건립이 주변 도시개발과 얽히면서 협의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고스란히 10조 원에 대한 기회비용도 허공에 날아가고 있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배경이 어찌됐든 미국 차 산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3분기까지 전체 차 판매가 지난해보다 6.3% 증가한 것인데요. 완연한 회복세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현대ㆍ기아차 판매는 추락했습니다. 경쟁사들이 10% 성장을 노리는 사이, 현대차 판매가 무려 14.4%나 줄어든 것이지요.

중국이라면 ‘사드 탓’이라며 핑계라도 댔을 텐데, 한미 FTA 이후 본격적인 무관세 혜택이 시작된 시점에 판매 부진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현대ㆍ기아차가 연간 900만 대 판매를 노리며 글로벌 5위 수성을 외치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차는 2008년 리먼쇼크를 기점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미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기름값 적게 들고 품질 좋은 한국차’라는 인식이 퍼진 덕입니다. 동일본 대지진도 적잖은 반사효과를 가져왔지요. 한마디로 스스로 일궈낸 경쟁력 못지않게 외적인 환경 요인도 컸다는 뜻입니다.

그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은 전기차와 친환경차 개발에 밤잠을 줄였지요. 여기에 차를 빌려쓰고 나눠쓰는 ‘공유경제’ 패러다임까지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한 해 1000만 대를 팔며 글로벌 1위를 수성 중인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FCA(피아트-크라이슬러) 인수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디젤 게이트 후폭풍을 벗어나기 위해 “M&A를 통해 50% 이상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것이지요.

배경에는 경쟁사인 프랑스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미국 GM 산하의 ‘오펠’을 인수하자 다급했던 나머지 M&A 가능성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세월을 되짚어보면 현대차는 이런 치열한 M&A에 인색했습니다. 1999년 기아산업 인수에 성공한 이후 단 한 건의 차 산업 관련 M&A도 없었으니까요. M&A는커녕 자율주행과 연료 기술을 둘러싸고 미국과 독일·일본 동맹 간에 기술 표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인 동맹 참여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현대차는 남들과 손잡고 함께 협력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2000년대 초, 미국 크라이슬러,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세타’ 엔진개발 얼라이언스에 참여했던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혹시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깊게 서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현대차 내부에서도 M&A의 중요성과 공동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다만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결정권자를 설득할 만한 능력은 없어 보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머지않아 “삼성전자까지 복병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소식을 허투루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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