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준수에 대해 ‘불인증’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핵 협정을 파기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협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으로 미국 기업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대(對)이란 전략 연설에서 “이란과의 협상은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협정 중 최악”이라며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인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언제든 우리의 참여를 취소할 수 있다”며 탈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파기 선언은 하지 않아 일단 파국은 면했다는 평가다.
이로써 이란 핵협정은 중대 위기를 맞이했다. 2015년 7월 타결한 이란 핵협정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최대 외교 성과로 꼽힌다.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는 이란에 가했던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게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란 핵협정뿐만아니라 북한 핵 문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번 조치가 이란의 핵무기 재개발을 촉진해 북한에 이은 핵위기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과 거래를 진행 중인 미국 기업들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 항공사 보잉은 80억 달러 규모의 항공기 80대를 이란에 판매하려 했으나 차질이 우려된다. 보잉 측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정부의 주도 하에 거래를 지속할 것이며 추가 가이드라인에 대해 미국 당국과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항공기를 구입하는 이란항공 측 CEO는 “미국이 협정을 탈퇴한다 해도 항공기 주문은 안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잉의 경쟁사인 에어버스도 이란에 항공기 100대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당장 타격은 없지만 앞으로 상황이 불투명하다. 대이란 무역을 진행하거나 현지 투자를 실행한 다른 산업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유가도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유엔의 제재가 풀린 후 이란은 원유 수출국 지위를 회복했다. 이란 국영 석유회사 관계자는 지난달 말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엔 제재가 풀린 후 하루 약 22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재가 재개되면 이란산 원유의 공급이 감소해 유가가 오르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이란이 석유 및 가스 생산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