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올해 노벨경제학상 이변...정통 경제학파 제치고 ‘행동경제학 선구자’ 수상 영예

입력 2017-10-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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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AP통신)
▲2017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AP통신)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주류 경제학에서 파생된 행동 경제학의 선구자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행동 경제학에 기여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리처드 세일러 교수를 선정했다고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왕립과학원은 세일러 교수에 대해 “심리학과 경제학을 통합한 개척자”로 묘사, 그의 연구가 새로운 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일러 교수는 심리학이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줬으며, 이는 비합리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정통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전히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이를 증명하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통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행동 경제학은 ‘서자’ 취급을 받았지만, 세일러 교수는 행동 경제학 덕에 수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은퇴 자금을 확보하는데 일조했다고 자평한다. 세일러는 장기 계획과 단기 유혹 사이의 긴장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귀를 막지만,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서도 죽음은 피하려고 자신을 기둥에 묶는 모험을 감행한다. 세일러 교수는 보통 사람들에게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예는, 예금계좌에 돈을 넣거나 즉시 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세일러는 행동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다수의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Quasi-rational Economics’와 ‘세일러 교수의 행동 경제학 입문(The Winner 's Curse)’이 있다. 후자는 ‘Anomalies’라는 칼럼 시리즈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기고한 해당 칼럼에서 시장 기반의 접근 방식은 불완전하다는 문제 의식을 계속해서 펼쳤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인간은 매우 합리적 또는 초합리적이며 냉담한 존재라고 간주되어왔으나 인간은 컴퓨터처럼 계산하거나 자기 통제에 관한 문제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칼럼은 전통적인 미시 경제학 이론의 정설에 반하는 논리로서 학계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집필 활동을 끊임이 없다. 2015년에는 ‘Misbehaving : The Making of Behavioral Economics’에서 행동경제학의 탄생을 논했고, 2009년에는 공저 ‘Nudge :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를 통해 공공 기관이나 민간 기업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서 바람직한 선택을 심어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논했다.

뉴욕타임스 뉴스 서비스의 칼럼니스트도 맡고 있는 세일러 교수는 미국의 금융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연재하기도 했다. 첫 번째 칼럼 제목은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 일부를 매각함으로써 미국의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다소 엉뚱한 소재였다.

그는 자산운용사 ‘풀러 앤 세일러 에셋 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투자자 집단은 손실 회피, 현상 유지 바이어스라는 인지 바이어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2004~2005년에는 톰슨 로이터 인용 영예상을 수상했다.

세일러 교수는 2015년 개봉한 영화 ‘The Big Short’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그는 밀레니얼 스타 셀레나 고메즈에 ‘뜨거운 손 오류(hot hand fallacy)’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올해 노벨상 수상자에는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특히 지금까지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고인이 된 엘리너 오스트롬(2009)이 유일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의 고란 한손은 수상자 발표 후 트위터에 “우리는 올해 수상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전체적으로 여성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벨위원회가 여성 과학자를 더 많이 지명하고 인종 및 지리적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므로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계약이론’의 지평을 넓힌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현대 경제는 수많은 계약으로 묶여 있다”며 두 교수가 만든 이론이 실생활의 계약과 제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이유를 들어 두 사람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시적인 분야인 계약이론을 만들어낸 하트와 홀름스트룀 교수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건 노벨위원회의 기준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8일 분석했다. 그동안 노벨 경제학상은 거시 경제 이론가들에게 후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들이 자신의 이론을 제대로 예측하거나 설명하지 못해 평판이 떨어지다보니 미시적인 부분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도 미시 경제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온 만큼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 시상식은 스톡홀름에서 12월 10일에 열리며, 상금은 작년보다 100만 크로나 오른 900만 크로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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