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의 뇌기능개선제 '종근당글리아티린'이 7개월만에 대조약 지위를 회복한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원 개발사의 품목'으로 인정된다는 보건당국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경쟁업체의 대조약 지정에 대한 이의제기로 ‘허가없는 의약품’이 7개월 동안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혼선을 겪으면서 ‘대조약 지정→취소→재지정’이라는 해프닝이 펼쳐졌다.
대조약은 기업이나 연구자가 개발하려는 의약품(시험약)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허가를 받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대조약과 비교해 흡수 속도와 흡수율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 등 20여개 품목을 생동대조약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선정 및 변경 공고 의견조회’를 오는 10월13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또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변경’을 공고했다.
지난 4월 개정한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보면 ‘대조약으로 이미 선정된 품목이 품목취소 또는 취하된 경우 품목취소 또는 취하수리와 동시에 대조약 선정이 취소된 것으로 본다’는 문구가 신설됐다.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은 지난해 3월 허가 취하됐기 때문에 이 조항에 의거 대조약에서 삭제된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정은 이 제품을 ‘원 개발사의 품목’으로 인정한다는 식약처의 판단에서다.
식약처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의 대조약 선정기준에서 ‘원개발사의 품목(R&D Focus, Pharma Project 등 공신력있는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한 경우에 한하며, 여러 품목인 경우 이들 품목 중 허가일자가 빠른 것으로 한다.)’라는 규정을 적용해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재지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글리아티린의 원 개발사인 이탈파마코와 종근당과의 계약관계를 보면 종근당이 원 개발사의 안전성과 유효성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종근당이 원 개발사가 축적한 자료를 공유하면서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생산했기 때문에 원 개발사로부터 기술이전받은 제품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종근당이 이탈파마코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았다는 근거는 'R&D 포커스(Focus)'라는 공신력있는 자료를 통해 입증됐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R&D 포커스는 IMS가 발간하는 자료로, 주로 의약품의 개발과정이나 라이선스 현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다. 이탈파마코의 글리아티린에 대한 R&D 포커스를 보면 국내에서는 종근당이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됐다. 오스트리아는 CSC, 스위스는 노바티스 등이 글리아티린의 권리를 갖는다.
‘원 개발사의 품목이 여러 품목일 경우 허가일자가 빠른 제품’이라는 조건에도 종근당글리아티린이 부합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당초 원 개발사인 이탈파마코로부터 동화약품, 대웅제약을 거쳐 종근당에 글리아티린의 권리가 부여됐다. 이미 동화약품과 대웅제약은 원 개발사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은 제품이 없는 상태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원 개발사의 품목 중 허가일자가 빠른 제품’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유일한 제품이라고 식약처는 판단했다.
대조약 지정 여부를 둘러산 논란은 대웅제약이 판매 중이던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 판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가면서 불거졌다.
대웅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국내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판매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이 더 이상 ‘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러자 대웅제약은 식약처가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삭제와 종근당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정을 문제삼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공고를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의 품목허가가 취하됐다는 이유만으로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한 것은 근거가 분명치 않고 대조약 변경 과정에서 사전통지나 의견조회 등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아 대조약 삭제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논리도 펼쳤다. 또 종근당글리아티린이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중앙행심위는 대조약 지정 절차상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대웅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행심위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식약처는 지난 2월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통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 중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다시 선정했다. 11개월 전에 허가를 취하한 제품이 대조약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이유다.
이후 식약처는 행정심판에서 지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규정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식약처는 지난 4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 개정을 통해 의약품 대조약 선정기준 중 원개발사의 품목을 명확하게 정하고 품목 취소(취하)된 품목을 대조약에서 삭제하는 내용 등을 반영했다.
식약처는 개정 고시된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근거로 지난 5월 글리아티린을 포함한 허가 취하 의약품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공고 삭제 품목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이후 5개월만에 후속절차에 돌입하면서 종근당글리아티린은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된지 7개월만에 다시 대조약 지위를 다시 인정받게 됐다. 다만 대웅제약이 또 다시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최종 대조약 선정 여부는 확정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조약 지정 여부에 대해 대웅제약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제약사들이 대조약 미지정에 대한 불편함을 제기하자 개정된 규정에 따라 대조약 삭제와 재지정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