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 윤모씨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화학물질 사태에 골치가 아프다. 다섯살 아이가 계란 반찬을 좋아하다 보니 정부가 안전하다고 인증한 제품으로 요리해서 주지만 정말로 괜찮을지 마음 한구석이 영 편치 않다. 생리대에서 화학물질이 검출됐다고 하니 윤 씨 본인은 생리컵과 같은 대체품을 찾아봐야 하는지 고민이다. 또 한참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두 살 아이는 생리대 여파가 기저귀까지 미칠까 걱정스러워 힘들어도 면 기저귀를 써야 하는지 맘 카페 등에서 동향을 알아보기 바쁘다.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케미포비아’에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스트레스가 정점에 달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벌어진 잇따른 사고는 “믿고 쓸게 없다”는 불신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연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를 시작으로 올해 초에는 브라질 닭고기 파동이 일어났다. 이어 분쇄육 햄버거 패티 사태, 질소가 함유된 용가리 과자 문제가 불거졌고 최근에는 살충제 계란을 비롯해 E형 간염 소시지까지 끊임없이 화학물질과 관련한 먹거리 안전 논란이 일고 있다.
화학물질 문제는 생활용품에서도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이 함유된 치약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돌이키게 했다.
올해 초에는 유한킴벌리의 하기스·그린핑거 물티슈 10종에서 메탄올이 허용치 이상 검출돼 엄마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또 2월에는 프랑스의 한 잡지에서 피앤지 기저귀 ‘팸퍼스’ 일부 품목에서 살충제 성분인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보도돼 국내에서도 기저귀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아울러 시중에 유통 중인 일부 중국산 휴대전화 케이스에서는 발암등급 1군 물질인 카드뮴과 납 등 유해검출이 검출됐다. 요가 매트 30개 제품 중 7개 제품에서는 불임과 조산 등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내분비계 장애 물질,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를 최대 245개 초과 검출돼 화학물질 공포가 가중됐다.
최근에는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을 비롯해 생리대 10종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나왔다. 하지만 릴리안을 제외하고 다른 제품은 안전성 여부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아 여성 소비자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생리대 안전 문제를 제기한 여성환경연대와 식약처가 문제가 된 제품 공개를 미루다 뒤늦게 시험 결과를 공개했으나 정작 제품과 업체명은 밝히지 않아 소비자의 화를 돋웠다.
40대 주부 박모씨는 “식품이나 생활용품에서 화학물질이 나왔다는 기사가 하루걸러 하나씩 나오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정작 어느 제품이 문제가 됐는지는 소비자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제품명이 밝혀지면 자연히 매출이 떨어질 기업을 고려해 익명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 정작 문제가 된 제품 사용으로 피해를 볼 소비자를 고려해 정확한 정보를 제때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