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알루미늄 외장재 업체 아르코닉이 최근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고층 아파트 화재사건으로 휘청거리게 됐다. 아르코닉이 생산한 빌딩 외장재가 런던 화재 당시 불길을 더욱 키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 아르코닉은 해당 외장재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르코닉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고층빌딩용으로는 해당 자재를 더는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건축 법규가 다르며 런던 그렌펠타워 비극으로 이런 문제가 더욱 부각돼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비극적인 런던 화재에 대한 당국의 조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르코닉의 이날 결정은 때늦은 대응이라는 평가다. 아르코닉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그렌펠타워 화재 소송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회사 주가는 이날 6% 급락했다.
화재가 일어난 아파트는 아르코닉이 생산한 ‘레이노본드 PE’라는 패널을 외장재로 썼다. 지난해 5월 마무리된 리모델링 과정에서 외벽에 부착된 이 외장재는 복합 알루미늄 패널 내부에 가연성 폴리틸텐 코어를 사용했다.
아르코닉은 영국에서 지난 수년간 문제의 외장재를 판촉해왔다. 외관상 깔끔하며 열과 빛을 효과적으로 반사시켜 에너지 효율도 좋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자재는 이미 두바이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화재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에 미국은 이미 특정 높이 이상의 건물에 이 제품의 사용을 금지한 상태다. 실제로 런던 화재가 일어났을 때 외장재가 급속도로 타오르면서 건물 전체로 불길을 확산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아르코닉도 화재의 위험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의 판촉물에서는 소방차 사다리보다 높은 빌딩에선 문제의 자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외장재 사용은 현지 건축 법규를 따른다’라고만 명시했다.
현재까지 그렌펠타워 화재로 최소 79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조사관들은 자국 내 많은 빌딩이 그렌펠타워와 비슷한 가연성 소재를 외장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안전에 대한 경고와 우려가 제기됐음에도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국 정치권도 역풍을 맞고 있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그동안 친성장 친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안전 규제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