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일본] 고령화 시대… 노인들의 오아시스 된 ‘편의점’

입력 2017-06-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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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사고 공과금 수납 대행… 점심 때도 식당 대신 편의점

▲도쿄의 한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블룸버그
▲도쿄의 한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블룸버그
#야마모토(75) 씨는 매일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점심 때쯤 되면 근처 음식점이 아닌 편의점으로 향한다. 반찬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한데다 도시락 종류도 꽤 다양해 일부러 식당에 갈 필요를 못 느낀다. 나온 김에 마실 것과 간식거리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편의점은 슈퍼마켓보다 좁지만 어지간히 필요한 건 다 있어서 다리가 불편한 야마모토 씨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인구 4명당 1명꼴로 노인인 일본에선 언제부터인지 편의점 풍경이 달라졌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편의점에서 쇼핑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과거엔 편의점이라 하면 주로 역주변이나 도로변 등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위치해 24시간 영업을 하고, 고객층도 맞벌이 부부나 독신자 등 주로 젊은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파트 밀집지역이나 주택가에 촘촘히 침투해 일용품에서부터 식음료와 즉석식품 판매, 서적, 금융, 공과금 수납 대행, 티켓 판매 등 각종 생활편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등 말 그대로 ‘편의점(convenience store)’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런 종합적인 서비스는 특히 거동이 불편하고 생활 반경이 크지 않은 노인들에게 크게 어필된다. 그래서인지 편의점의 고객층도 고령화하고 있다. 일본 최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이 매년 발표하는 업계동향 보고서 ‘투자자 데이터북’에 따르면 28년 전인 1989년만 해도 50세 이상 고객 비율은 9%에 그쳤지만 2013년에는 그 비율이 33%로 늘었다. 반면 1989년 약 35%였던 20대의 비율은 19%로 쪼그라들었다.

이처럼 노인층의 편의점 이용이 늘어난 까닭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 구성에 변화가 생긴 영향이 크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개인시간이 증가해 편의점을 이용할 기회가 많아졌다. 동일본 대지진 후 물품 부족 시기에 편의점을 이용하면서 단골이 된 노인도 적지 않다. 또한 슈퍼마켓보다 매장 크기가 작고, 쇼핑 시 매장 안을 이리저리 걷지 않아도 되고 가격도 시세와 비슷하다. 1980~90년대 편의점을 이용하던 젊은층이 그대로 중년이 된 영향도 있다.

그러나 편의점을 이용하는 노인 인구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한 접근성이다. 대형 슈퍼마켓은 교외에 있어 자동차를 타거나 한참 걸어야 하지만 편의점은 어디든 있다. 한 조사에서는 편의점을 이용할 때 이동수단으로 ‘도보(52.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자동차가 23.3%, 자전거는 19.4%였다.

이에 편의점 업계도 고령사회에 맞게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에 적극 진출하거나 제품 구성도 중년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등 서비스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업계의 노인 고객 쟁탈전이 치열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 서클K는 노인 간호에 주목, 2011년부터 매장의 단말기를 이용해 환자식과 성인용 기저귀, 지팡이 등 노인 간호용품 약 200개 품목을 주문할 수 있게 했다. 주문한 제품은 나중에 매장에서 받는 구조다. 패미리마트는 50~65세 고객층이 타깃. 이 회사는 ‘어른들의 편의점’이란 타이틀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을 도쿄 다이칸야마에 열었다. 이곳에는 일본식 파스타와 과자 등 고령자를 위한 제품을 다른 곳보다 많이 들여놨다. 로손의 경우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물건값은 로손 매장에서 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손이 운영하는 신선식품 매장 ‘로손스토어100’은 양배추, 양파, 당근 같은 채소에서부터 육류와 반찬류 등 모든 제품을 100엔에 판매한다. 도시락 값은 100엔은 아니지만 가장 비싼 게 300엔이다.

세븐일레븐이 자랑하는 서비스 ‘세븐 밀’은 도시락뿐 아니라 편의점에서 파는 제품을 500엔어치 이상 구입 시 무료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365일 24시간 간단히 주문할 수 있으며, 주문은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받는 장소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상관없고, 퇴근길이나 외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매장에서 직접 가져갈 수도 있다.

아내와 둘이 산다는 한 75세의 편의점 고객은 “하루 두 번 매장을 찾는다”며 “고령자만 사는 집에는 편의점이 좋다, 집에서도 가까워 좋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유통 전문매체는 “편의점은 각 지역의 세세한 요구에 부응하기 쉽다”며 “슈퍼가 교외로 옮겨져 갈수록 대형화하는 가운데 향후 노인에게는 편의점이 생활의 거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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