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 약 1년 만에 유럽연합(EU) 측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오는 19일(현지시간) 개시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정부는 가뜩이나 조기 총선의 패배로 구심력을 잃은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런던 아파트 대형 화재라는 악재까지 떠안은 채 국가의 명운을 가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영국은 14일 발생한 런던 서부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로 침통한 분위기에 잠겨 있다. 이번 화재가 당국의 안전 불감증에 따른 후진국형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영국 정부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17명이다. 일부 현지 언론은 부상자 중 위독한 사람이 많아 희생자가 최대 1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해당 아파트 구조가 복잡해 구체적인 사망자 수의 집계에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총리의 늑장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메이 총리는 화재가 발생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튿날인 15일 오전 사고 현장을 찾은 메이 총리는 아파트 주민이나 기자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소방 당국자들과 면담만 한 뒤 현장을 떠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정부와 EU 측은 이날 브렉시트 협상을 19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브렉시트 협상 개시가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 장관과 미셸 바르니에 EU 측 협상 대표는 사전 논의를 거친 후 브렉시트 협상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은 2019년 3월 말 EU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해당 시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 1년이 지나도록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영국은 물가상승과 임금 정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 거점으로 영국을 택했던 다국적 기업들이 영국을 이탈하는 엑소더스가 우려되고 있으며, 총선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영국 투자를 보류하고 있다. 잇단 테러와 이번 대형 화재 사고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영국은 총체적 난국이다. 여기에 메이의 주장대로 하드 브렉시트로 EU 단일시장 접근도 어려워지게 된다면 영국 시민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