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공표 이후 8개월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중국의 대응 강도는 점점 높아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제재를 살펴보면 화장품, 소비재 등 주로 최종 소비재이거나 문화 및 서비스 산업에 국한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국 산업 내에 ‘대체재’가 명확하게 존재하거나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은 품목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무풍지대’ =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사업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 시장 점유율 70%가 넘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의 D램 반도체나 삼성디스플레이ㆍLG디스플레이의 OLED를 대체할 부품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화웨이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의 D램과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를 사용한다. 한국산 부품을 제때 들여오지 못하면 한국 기업도 손해를 보지만 중국 기업 역시 타격을 받는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중국에서 전체 매출의 69%를 올리고 있다. 사드 논란에도 불구 중국의 옌청시 서기관이 LG디스플레이를 전격적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오는 4월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리는 한중 디스플레이 협력 교류회도 예정대로 열린다.
현대ㆍ기아차는 올해 ‘대륙’ 판매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는 분위기이다. 지난 2일 웨이보 등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현대차를 파손하고 페인트로 낙서한 사진이 게재됐다. 또 다른 SNS에는 한국 업체 직원이 밖에 세워둔 한국 차량 타이어가 펑크 나고 유리창이 깨진 사진도 올라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대ㆍ기아차가 ‘제2의 도요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2년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 당시 도요타는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으며 그해 10월 시장점유율이 전년 동월 대비 44% 급감했다. 같은 기간 닛산과 혼다도 41%, 35% 줄었다.
하지만 사드 후폭풍이 현대차 그룹을 빗겨 나갈 것이란 전망론도 솔솔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의 중국법인은 현지업체와 조인트벤처(JV) 형식으로 지분이 50대 50으로 나눠져 있다. 이에 이익도 합작사와 절반씩 나눠 갖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를 방문한 옌청시 서기관이 현대차 그룹도 방문하며 협력 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철강ㆍ화학 정부 차원의 대응 요청 = 철강과 석유화학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갈등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우리나라에 대해 반덤핑 12건, 세이프가드 1건 등 총 13건의 강도 높은 수입규제를 발동했다. 이 중 8건이 화학, 2건은 섬유, 1건은 철강ㆍ금속이었다. 태양광 발전용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OCI, 한화케미칼, 한국실리콘은 지난해 중국 상무부에 판매 자료를 제출했다. 중국 정부가 폴리실리콘 반덤핑 재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 폴리실리콘 수입 시장에서 한국산은 50%가 넘는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를 결정할 경우 국내 폴리실리콘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철강과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중국의 폴리옥시메틸렌(POM) 및 폴리실리콘 등에 대한 반덤핑 조사와 관련,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했다.
중국이 정치ㆍ외교적 이유를 들어 경제보복을 가한 나라는 적지 않다. 프랑스 영국 노르웨이 등 선진국에서부터 필리핀 대만 몽골 같은 주변국 등 다양하다.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제 체질을 높인 과거 사례를 보며 한국도 장기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 국무장관의 방한ㆍ방중 일정에 따라 4월을 전후해 상황이 진정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하나금융투자 김용구 연구원은 “오는 17일 북한 도발 및 중국 측 사드 보복조치 관련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미국 렉스 틸러슨 미 국부장관이 방한하고 4월 중 미중 정상회담이 실시될 것”이라며 “중국의 대국굴기 내지는 주변국 길들이기 시도가 양국 간의 통상 및 외교관계의 완전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해당 리스크는 단기 파장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