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Pfizer)가 한국 시장에서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본사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재로 실적 부진이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특허만료 의약품들이 수십개 복제약(제네릭)과의 경쟁울 뚫고 반격에 성공했다는 점애 이채롭다. 한국 정부의 금연치료제 약값지원 정책의 수혜도 입었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화이자제약의 지난해(2015년 12월~2016년 11월) 영업이익은 67억원으로 전년대비 흑자전환했다. 매출액은 6814억원으로 5.2% 늘었다. 한국화이자의 매출은 와이언스와의 합병 실적이 반영된 2013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나타냈다.
한국화이자의 실적 호조는 본사의 글로벌 실적이 부진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화이자가 지난달 발표한 실적을 보면 지난해 매출액은 136억2700만달러(약 15조6000억원)로 전년(약 140억4700만달러) 대비 3% 감소했다. 항암제 부문을 제외한 주력 사업이 부진을 보였다.
화이자의 실적 부진은 주력 제품이 대부분 특허만료 이후 제네릭 제품의 공세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화이자의 특허만료의약품 사업부는 2015년 30억4400만달러에서 지난해 28억2100만달러로 매출 인하 폭이 2억2300만달러(약 2560억원)에 달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이자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제품도 주로 특허만료 의약품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본사와는 달리 실적은 개선됐다.
한국화이자가 판매 중인 주요 제품의 매출을 살펴보면 이례적으로 특허만료 의약품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의약품 조사업체 IMS헬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의 매출은 1237억원으로 전년보다 15.1% 상승했다. 지난 2009년 특허가 만료된 리피토는 현재 무려 109개(10mg 기준)의 제네릭이 진출한 상태다. 똑같은 성분의 제품 109개와 경쟁을 펼치는데도 매출은 늘었다는 얘기다.
고혈압치료제 ‘노바스크’의 지난해 매출은 535억원으로 2015년보다 2.3% 늘었다. 현재 건강보험급여가 적용 중인 노바스크5mg의 제네릭은 75개에 달한다. 간질치료제 ‘리리카’와 ‘뉴론틴’, 고혈압복합제 ‘카듀엣’ 등도 수십개 제네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진통제 ‘쎄레브렉스’와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엔브렐’은 제네릭 진출에 따른 약가인하로 30%대의 매출 하락세를 나타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은 특허만료 이후 제네릭의 공세에 매출이 하락한다’는 ‘마케팅 속설’이 한국화이자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각 사업부별 제품 특성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화이자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종전 혁신제약·백신·항암제·컨슈머헬스케어 사업부를 이노베이티브헬스(Innovative Health) 사업부로 개편했다. 이노베이티브헬스 사업부는 내과질환, 염증·면역질환, 희귀질환, 백신, 항암제, 컨슈머 헬스케어 등 6개 사업부로 구성된다. 제품군이 아니라 질환별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 효율적인 영업이 가능했다는 게 한국화이자 측 설명이다.
하지만 단순히 마케팅 조직의 개편이 ‘특허만료의약품의 재발견’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업계에서는 특허만료 의약품이 제네릭과 보험약가가 같아지는 국내 제도를 한국화이자가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제네릭이 발매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약가는 종전의 70%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후 1년이 지나면 특허만료 전의 53.55%로 약가가 내려간다. 제네릭은 처음에는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59%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고 1년 후에는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53.55%로 내려간다. 사실상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은 제네릭과 같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구조다.
한국화이자는 최근 한국인을 대상을 진행한 리피토의 대규모 임상연구를 2건 발표하는 등 특허만료 의약품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했다. 통상 다국적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마케팅에 소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리피토의 매출은 지난 2007년 840억원에서 지난해 1237억원으로 47.3% 증가했는데, 절반 수준으로 약가가 내려간 것을 감안하면 판매량은 3배 가량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화이자는 한국 정부의 금연정책의 수혜를 입는 ‘운’도 따랐다. 정부는 지난 2015년 담뱃값 인상 이후 금연치료제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12주짜리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는 참가자에 약값 본인부담금을 전액 지원한다. 화이자의 금연치료제 ‘챔픽스’가 금연치료제 약값 지원 정책의 효과를 봤다. 챔픽스의 지난해 매출은 488억원으로 전년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2007년 국내 발매된 챔픽스는 '자살'과 같은 정신신경계 부작용이 연이어 보고되면서 의료진과 시장에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챔픽스의 2014년 매출은 63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부의 약값 지원 정책이 시작되면서 2015년 242억원으로 수직상승했고 지난해에도 10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챔픽스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이 제품설명서에서 심각한 신경정신학적 이상반응에 대한 블랙박스 경고문을 삭제할 것을 최종 승인하면서 '부작용 의약품' 누명에서도 벗어났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 개선은 챔픽스의 매출 증가의 영향도 있다"면서 "특허만료 제품은 한국인 대상 연구 등으로 제품 가치를 재확인하고 변화 환경과 시장의 니즈를 반영해 새로운 제형 출시, 사회공헌활동 등 다양한 활동과 투자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주효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