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0부(재판장 이은희 부장판사)는 22일 하나은행이 무보를 상대로 청구한 단기수출보험금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하나은행이 청구한 금액을 대부분 인용해 줬다. 하나은행은 소송청구금액과 지연이자 등 8030만 달러(약 962억 원)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모뉴엘 사태를 놓고 가장 먼저 판결을 받았던 수협이 패하면서 은행권에는 암울한 분위기가 드리워졌지만, 지난 20일 농협에 이어 이날 하나은행이 승소하면서 대부분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보는 이에 대해 항소할 계획이다.
이 소송의 쟁점은 ‘허위 수출거래’를 보험적용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와 은행의 주의의무 이행 여부다. 은행 측은 수출거래가 가짜로 이뤄졌더라도 보험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뒤늦게 허위 수출거래에 기초한 채권임이 밝혀져 수입자가 지급을 거절한 경우도 보험계약에서 정한 ‘위험’이라는 것이다. 은행 측은 또 “수출서류에 대한 형식적인 심사를 할 주의의무만 부담한다”며 심사를 충분히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무보 측은 “보험 계약은 ‘진정한’ 수출거래가 대상”이라며 “(모뉴엘) 수출거래는 가공의 허위 수출거래이므로 보험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거래를 통해 수출채권이 생겼음에도 수입자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때 보험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서도 무보 측은 수출서류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은행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서 지난 11월 동일한 사건으로 수협 사건을 심리한 이 법원 민사21부는 “보험계약적용 대상에 허위 수출거래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무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 재판부는 약관에서 ‘물품의 선적일 또는 수입자의 물품 인수일’에 보험관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허위 수출거래에는 물품의 선적일과 인수일이 없으므로 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모뉴엘 사태는 전자제품 업체 모뉴엘이 2014년 허위 수출 자료를 만든 뒤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아 KEB하나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 국민은행, 수협 등 금융기관 10곳에서 거액을 대출받은 사기 사건이다. 은행들은 모뉴엘의 수출 실적이 가짜로 드러나 수출채권을 결제하지 못하자 무보에 단기수출보험(EFF)금을 청구했다. 무보 측이 ‘수출업체의 사기 대출은 지급 사유가 안된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6곳이 소송을 냈다.
앞으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IBK기업은행, KB국민은행, KDB산업은행 소송은 모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내년 1월,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은 내년 상반기 등 차례로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무보를 상대로 낸 소송에 걸린 금액은 기업은행이 990억 원, 하나은행 916억 원, 농협은행 620억 원, 국민은행이 550억 원, 산업은행 465억 원, 수협은행 110억 원가량이다.
모뉴엘 회사 대표인 박홍석(54) 씨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홍콩 등 해외지사를 통해 수출입 물량과 대금을 부풀려 3조4000억 원대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