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선생이 우리 민족을 개구리에 빗대었다고 생각했다. 일제의 생각이 맞았다. 그전에도 민족의 고난에 관한 글을 많이 썼던 선생은 석방된 후 함흥비료공장에 입사, 동료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다 해방 바로 전해에 병사했다.
12일 아침 신문을 보다가 나는 선생과는 다른 의미로, 내가 개구리임을 알아차렸다. 내가 가마솥 속의 개구리임을 알게 되었다. 물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마냥 좋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 개구리라는 말이다.
신문이 전한 소식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단종’ ‘현대자동차 파업 위기’ ‘한진해운의 한 달 넘은 표류’ 등이다. 한 가지씩 터질 때는 그러려니 했던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말 그대로 총체적 파국이 되어 눈앞에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와 있었다. 차가운 물이 약간 미지근해졌나 싶더니 순식간에 온도가 치솟았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죽음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삼성전자는 갤노트7의 단종으로 3조 원의 비용 부담을 안아야 한다. 전 세계에 풀려 나간 갤노트7을 교환 혹은 환불해주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매출 손실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 들어 지난달 30일까지 24차례 파업을 이어왔다. 지금은 파업이 중단됐지만 언제든 재개될 개연성이 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쏘나타 엔진 리콜을 했고, 국내에서는 에어백 결함을 국토교통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9월 1일 법정관리가 개시된 한진해운의 화물선 중 상당수는 아직도 짐을 싣고 공해를 떠돌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14차례나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이런 것들이 나하고는 깊은 관계가 없는 줄로 알았다. 삼성전자는 돈 많은 회사니까,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니까 어떻게든 헤쳐 나가겠지, 그동안 잘 벌어서 회장, 사장 연봉이 100억 원이 넘었는데,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니까 자기네들끼리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남의 일 보듯 했는데 이게 그게 아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 평균 연봉이 억대 수준이라는 현대차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더러워서 다시는 현대차 사지 않는 걸로 ‘복수’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새 차를 살 능력이 없어서 복수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복수는커녕 저들은 억대 연봉도 모자라 수당 더 달라, 기본급 더 올려 달라는 파업을 무시로 펼쳐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나에게 복수를 퍼부었다.
한진해운도 그렇다. 그 집 오너 가족들이 희한한 일들을 벌일 때, 그 철딱서니 없음을 비웃었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그런 어리석은 일들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정부의 미움도 덜 샀을 게고, 법정관리도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이 갤노트7의 하자와 리콜, 그리고 마침내 생산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현대차 노조가 사흘돌이로 파업을 벌인 결과,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수온이 급속히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휴대전화기를 포함한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2%가 줄었다. 집계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30~50% 감소는 예삿일이 아니다.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8%와 6%. 우리나라 수출의 14%나 차지하는 두 제품의 수출 부진의 결과는 경기 침체의 가속화, 장기화이다.
삼성전자의 수출 부진으로 삼성전자 사장의 급여를 아무리 깎아도 부품업체 종업원의 급여 삭감을 달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의 급여는 여태까지 저들이 해온 걸로 봐서는 깎일 것 같지도 않다. 외국 업체보다 차를 더 잘 만들지도, 더 빨리 만들지도 못하면서 임금은 더 많이, 더 자주 올려 받았으니 하는 말이다. 약하고 작은 개구리가 더 일찍 죽게 될 처지이다.
가마솥 아궁이에 던져질 장작은 계속 쌓이고 있다. 이미 높게 쌓인 장작 더미는, 국내적으로는 후진적 정치와 기업의 황제적·족벌적 경영, 귀족적 노조들의 이기적 파업으로, 국외적으로는 전반적 경기침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장작 때문에 더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기네 시장 문은 닫고 우리 문은 더 열라고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도 우리의 일방적 시장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이 온도를 어떻게 낮출 건가? 내가 삶겨 죽기 전에 누가 차가운 물 몇 바가지를 이 가마솥에 쏟아 부어 뜨거운 물을 조금이라도 식혀주지 않으려나? 함께 있는 개구리들 가운데 이 속이 뜨겁다는 사실을,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개구리가 많고, 그걸 아는 개구리들은 제 한 목숨 더 오래 끌면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나도 불쌍하지만 저들도 불쌍하다. 우리의 죽음은 또 누가 애도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