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이란 내 해외사업이 여전히 답보 상태다.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이 이뤄진 지 반년이 다 돼가지만 단 한 건의 본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등 사업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12일 해외건설협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는 이란에서 올 들어 이날까지 한 건의 수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제로 수주액이다. 그나마 거둔 유일한 사업은 전시·행사 업체가 코트라의 발주를 받아 테헤란 한국우수상품전에 부스를 설치한 공사로 47억 달러 규모다. 제재 이전인 2010년 국내 건설업계에서 6번째 시장이었던 이란은 현재 18위에 그치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5월 사상 최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방문, 52조 원 잭팟을 만들며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대림산업은 이란 알와즈와 이스파한을 잇는 49억 달러 규모의 철도 공사와 19억 달러 규모의 박티아리 댐·수력발전 공사 가계약을 맺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사우스파 12단계 확장 사업의 기본계약을 체결한 뒤 협의를 진행 중이다. 잔잔 가스복합발전소 역시 전력구매계약(PPA) 단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100억 달러 규모의 바흐만제노 정유시설 플랜트 공사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던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현재 파이낸싱 단계에서 협의를 진행 중이며, 연내 발주처에 관련 서류를 제출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사업이 당시 진행됐던 단계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법적 효력을 갖는 본계약으로 이어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연내 이란 내 수주 계약이 이뤄지는 게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의 이란 시장 진출 난항은 이미 예견됐다. 해외사업 수주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이란 내 달러 사용 금지로 결제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데다, 발주처의 높은 금융조건 장벽 등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란 발주처 대부분은 재원 부족으로 시공사가 설계, 조달, 시공(EPC)에 재원까지 조달하는 ‘시공자 금융주선 방식’을 택하고 있어 본계약 성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수출입은행이 현지 사업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90억 달러 규모의 수출금융 기본여신약정(FA)과 관련한 협상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8월 말부터 유료화 결제가 가능해져 장애 요인의 일부는 해소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공적개발원조(ODA)는 개발도상국 등에서 작은 규모의 인프라 공사에 들어갈 때만 가능해 현재 파이낸싱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유로화 결제가 가능해졌다고 해서 사업이 단기간에 속도를 내는 건 어렵지만 돌파구가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건설업계가 재원 마련의 역량을 이제 스스로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차원의 자금 조달은 한계가 있는 만큼 발주처의 고도화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투자은행을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등 파이낸싱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해외 건설 전문가는 “발주처의 요구 조건은 점점 까다로워지는데 우리는 이 같은 환경 변화를 흡수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며 “정부의 안정적 금융지원도 중요하지만 건설사들의 투자개발형 사업에 대한 기획 제안 역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