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전 기획관의 발언은 경악 그 자체다. 영화 ‘내부자들’을 나 전 기획관처럼 해독,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게 한다. 정보나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 이론을 온몸으로 보여준 그에게 아연실색할 뿐이다.
‘본 영화는 실제와 상관이 없는 허구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연입니다.’ 나 전 기획관 발언의 원전 역할을 한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신문사 논설주간의 대사가 나온 ‘내부자들’이 끝난 뒤 관객에게 알리는 자막이다.
영화 속 대사까지 인용하며 말한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은 ‘내부자들’ 내용이 자막과 달리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에도 확장판 관객까지 포함해 915만 명이 ‘내부자들’을 관람했다는 자체가 놀라운 흥행 성적이다. 이 같은 흥행 성과는 자막의 역설에 기인한 바 크다.
“1%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나 전 기획관처럼 영화를 해독하는 사람도 있지만 99%에 속하는 관객 대부분은 정반대로 ‘내부자들’을 해석했다. 관객 대다수는 영화가 상영되는 130분 중 125분간을 수놓은 권력을 잡기 위해 불법과 부패를 서슴지 않는 검사 출신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자본과 권력에 굴종하는 언론인, 부정과 비리로 기업을 키우는 재벌은 허구가 아닌 2016년 대한민국 현실의 참혹한 자화상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5분간을 장식한 비리 정치인, 불법 재벌, 부패 언론인 등 소위 1%에 대한 징악(懲惡)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라 생각했다. ‘내부자들’을 본 99%에 속한 관객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1%의 탐욕과 부정, 불법, 인간성 상실에 분노했고 이들에 대해 징악이 이뤄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 절망했다.
반면 “민중은 개·돼지다”라는 발언을 당당하게 한 것을 보면 나 전 기획관을 포함한 1% 사람들은 ‘내부자들’의 125분간 펼쳐진 1%의 행태를 어쩌면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5분간 진행된 1%에 대한 징악에 불만을 표했을지 모른다.
99%에 포함된 국민과 1%가 되려는 나 전 기획관은 각각 양극단의 시선에서 ‘내부자들’을 보고, 정반대의 관점에서 자막의 역설, 즉 ‘본 영화의 내용 대부분은 허구가 아닌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다만 결론 부분만 허구입니다’에 공감한 것은 아닐까. ‘내부자들’의 상당 부분이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나 전 기획관과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는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최근 잇따른 망언 행렬이 잘 입증한다.
나 전 기획관은 ‘내부자들’에 “대한민국 헌법 제2장 11조.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우리 아들들은 그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대사가 나온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