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미디어버스(media-verse)] 칸에서 펼쳐진 여성 영화제(?)

입력 2016-05-26 10:53 수정 2016-05-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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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장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축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에게는 또 다른 영화 같기도 하다. 얼마 전 폐막한 제69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도 그랬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나는 여성영화 한두 편(?)을 감상했다.

그 한 편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임의로 제목을 짓자면 ‘맨발의 레드카펫’.

줄리아 로버츠는 여성 감독 조디 포스터가 연출하고 자신이 출연한 영화 ‘머니 몬스터’ 프리미어에 참석하기 위해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가 레드카펫을 오르며 살짝 들어올린 드레스 아래에서 반전이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발이 아니라 맨발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 프리미어에 참석하려던 일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지 않아 영화제의 오랜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았다며 입장을 거부당한 것에 대한 ‘비웃음’이 분명했고, 그래서 통쾌했다.

입바른 얘기로 워낙 유명한 수잔 서랜든은 아예 남성 드레스 코드를 택했다. 개막식에 서랜든은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고 나타났고, 굽이 없는 플랫 슈즈를 신었다. 역시 지난해 여성들의 성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힐 게이트(heel gate)’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다운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명징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여줬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여배우들이 적지 않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녀 임금 격차를 얘기해 많은 박수를 받았던 패트리샤 아퀘트, 유엔 위민(UN Women)을 통해 ‘히포쉬(HeForShe)’캠페인을 시작하며 똑부러지는 연설을 했던 엠마 왓슨 등이 대표적이다. ‘히포쉬’는 세상의 절반인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캠페인이다. 반듯한 이미지의 이들과 달리 코미디 배우 에이미 슈머는 ‘대놓고 거칠게’ 여성들의 욕망과 불평등을 얘기해 문제적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때때로 속시원한 말을 대신 해준다.

그러나 가끔 아쉬웠다. 일반적인 여성 직장인에 비해 개인적일 수 있는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주장에 자유로울 것 같아서.

비치 미디어(Bitch Media)의 공동 창업자이자 편집국장인 앤디 지슬러는 최근 ‘우리는 한때 페미니스트였다(We Were Feminist Once)’라는 책에서 이른바 ‘유명인 페미니즘(celebrity feminism)’을 지적했다. 유명인의 이미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미지와 판타지 사이에서 페미니즘의 구체성이 드러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탈맥락화된 채 팔린다 하여 ‘시장 페미니즘(marketplace feminism)’이란 단어도 썼다. 따라서 그는 미디어나 스타를 이용하는 것보다 책을 통한 페미니즘 확산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칸에서 보여준 여배우들의 행동이 훌륭하지 않은 건 아니다. 피에르 레스큐어 칸 영화제 대표의 말도 멋졌다. “몇 년 후에는 이 자리에, 그리고 지금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리모 자리에 여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은 박수로 환호했다.

수전 서랜든과 같이 출연해 화제였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 이후 지나 데이비스는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Geena Davis Institute on Gender in Media)’를 세웠다. 더 많은 여성 공동 주연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우리는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변화가 뭔지를 모르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면서 “캐스팅하기 전에 한 번 더 살펴 달라. 그럼 더 많은 여성이 출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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