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발 한국판 양적완화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여소야대로 구성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한국은행도 한은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다만 최근 해운과 조선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재원 지원 부문에 대해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요청이 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또 정부의 구조조정안이 가닥을 잡는 게 먼저라는 입장도 내놨다.
27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전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강봉균 위원장이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을 말했는데 이건 한번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야 된다”고 밝혔다.
앞서 강 위원장은 4·13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건 바 있다. 내용인즉슨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산금채)과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채권(MBS)을 인수토록 하자는 것이다. 결국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꺼져가는 듯한 한국판 양적완화에 박 대통령이 불을 지핀 셈이다. 반면 박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에도 불구하고 실제 논의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총선과정에서 야당이 이 정책에 대해 정면 비판한 바 있어서다. 또 19대 국회가 마지막 임시회를 열고 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데다, 20대 국회도 개원과 원 구성 등을 기다리려면 빨라야 올 하반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총선이후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주요20개국(G20) 등 회의차 워싱턴을 방문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채권 직접인수 자체는 본질적 문제 아니고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에 한은이 나서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라며 “그런 기대와 요구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 한은 관련 법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건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법 개정이 필요한 강봉균식 한국판 양적완화에는 반대하지만 한은이 할 수 있는 다른 방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 지난 19일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누가 보더라도 위기상황으로 생각을 하고 그야말로 신용경색이 생긴다든가 우량한 기업조차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든가 하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경우라면 저희들(한은)이 보다 적극적인, 직접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금리정책 또한 정부의 재정정책과 구조조정과의 조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이 총재는 “인하카드를 아껴야한다”면서도 “금리정책도 재정정책, 구조조정 정책과 같이 가야만 효과가 크다”고 밝혔었다.
금융위원회가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를 개최하면서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해운업과 대우조선해양 STX 등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한은의 이같은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 분위기다. 한은은 공보관실을 통해 “관련 법규와 중앙은행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수행해 나가겠다”,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연거푸 내놨기 때문이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도 “한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가 세간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으로 안다”면서도 “구조조정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앞서간 추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조조정안이 확정돼야 한은도 어떻게 얼마나 지원할지를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은 논의가 가닥을 잡은 후라야 발권력동원 논란이 불거져도 불거질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