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경북 영주군 풍기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니혼 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1937년 일본 음악평론사 기자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춘향전’, ‘벌판’ 등을 무대에 올린 고인은 1940년 귀국해 신문 기고 활동을 하다가 중국 하얼빈 등지에서 극단을 조직, 공연에 나섰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국내 최초의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 최초의 음악 교과서인 ‘임시중등음악교본’ 등을 썼다.
특히 고인은 현 서울시뮤지컬단의 모태가 된 1962년 한국 최초의 뮤지컬단 ‘예그린악단’ 창단 멤버로 활동했으며, 1966년과 1970년 이 악단의 단장으로 활동했다. 예그린악단 단장으로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88서울 올림픽 개·폐막식 시나리오 등도 집필했다. ‘살짜기 옵서예’는 나흘간 단 7회 공연에 1만6000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유럽 무대에서 호평받은 안은미의 ‘심포카 바리’, ‘춘향’,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음악펜클럽 회장,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유니세프(UNICEF) 문화예술인클럽 회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고문 등을 지냈다. 은관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딸 박화경, 아들 동철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시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