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주년 3·1절을 앞두고 LG그룹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과 부친인 춘강(春崗) 구재서 공(公)의 독립운동 정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중경임시정부 청사 복원사업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시설, 국가유공자 지원 사업이 대(代)를 잇는 LG의 지원으로 ‘독립운동 정신’이 끊이지 않고 계승되고 있어서다.
29일 LG에 따르면 구인회 LG 창업주와 그의 부친인 춘강 공은 중경임시정부와 상해임시정부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독립자금을 지원한 일화는 태평양 전쟁으로 시국이 좋지 않았던 194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포목상을 경영하고 있던 구 창업회장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유림 사회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혔던 백산 안희제 선생이었다. 신병 치료차 잠시 귀국했던 백산 선생은 만주로 돌아가기 전, 독립군 양성을 위한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1만원을 부탁하기 위해 구 창업회장을 찾아온 것이다.
구 창업회장은 1931년 7월에 자본금 2000원으로 구인상회를 창업했다. 당시 80㎏짜리 쌀 1가마니가 약 20여원임을 감안한다면 1만원은 쌀 500가마니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내놓는 결심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구 창업회장은 “당할 때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 위험을 무릅쓰고 1만원의 독립 자금을 희사했다.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구 창업회장의 부친인 춘강 공이 영향이 컸다. 춘강 공은 1930년경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정 구여순(一丁 具汝淳) 선생을 통해 당시 상해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 일화 5000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 LG하우시스가 독립운동 관련 시설 개보수와 독립유공자 지원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LG하우시스가 이달 2일 전남 보성군에서 ‘서재필 기념관’ 재개관식을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