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믿기 힘든 얘기겠지만, 올해 들어 이상하게 입맛이 없었다. 배고프면 새벽에도 계란 곱게 풀어 면발 탱탱한 라면을 끓이던 내가 말이다. 끼니마다 밀려오는 치열한 허기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는데, 전에 없이 무기력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발뮤다 더 토스터 리뷰를 맡았다. 사실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제품이다. 출시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사야겠다고 손톱을 물어 뜯으며 초조해 할 정도였으니까. 근데 하필 지금이라니. 밥 한 공기도 비우질 못해 쩔쩔매는 이 시점에 말이지.
“있잖아, 나 이렇게 입맛이 없는데, 토스터 리뷰 할 수 있을까?”
신촌 김진환 제과점에서 식빵을 두 봉지를 사 오며 후배 기자에게 투덜거렸다. 후배에게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하겠다.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걸 못찾았던 모양이다. 집나간 입맛과 간만에 조우한 기념으로 사무실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갖은 레시피로 신나게 식빵을 구워 보았다. 맛있었다. 정말로. 그럼 리뷰 시작하겠다.
일단 디자인부터 얘기해야겠지. 솔직히 토스터라는게 아무리 좋아봤자, 그 신박함엔 한계가 있다. 빵 반죽만 넣으면 식빵으로 변신하고 버터를 발라 토스트로 변신시켜주는 기기도 아닐테고 말이다. 무슨 얘기냐면 내가 발뮤다 토스터에 혹해서 출시도 전에 군침을 흘렸던 이유에는 디자인이 50% 쯤 차지했다는 뜻이다.
과연 가전계의 애플이라는 별명 답게 성능은 물론 디자인과 디테일, 컬러, 소재까지 섬세하기 짝이 없다. 블랙도 예쁘고 화이트도 예뻐서 고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판매를 시작하지 않은 그레이도 숨 막히게 시크하다. 주방의 품격을 바꾸는 것 같은 이 담백하고 뽀얀 생김새.
다이얼 주변을 두르고 있는 아이콘까지 예쁘다. 다이얼을 돌렸을 때의 느낌까지 좋다. 토스터에서 나는 소리까지 일일이 디자인했다고 하니, 결벽증에 가까운 디자인 철학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난 이런 거 정말 좋더라.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만든 물건들 말이다. 담담한 척 심플하게 생겼지만 사실 모서리를 두르는 곡선까지 철저히 계산된 그런 제품들.
기왕 요란하게 얘기를 시작한 김에 더 토스터의 탄생(?) 배경에 대해 살짝 알아봤다. 데라오 겐 발뮤다 사장은 바비큐 파티에서 우연히 빵을 구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주 맛이 좋았던 것이다. 바로 토스터 개발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숯불에 빵을 구워도 그 때 그 맛이 나오지 않았다. 힌트는 바비큐 파티를 하던 날의 날씨에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날 비가 오고 있었던 것. 맛의 비결은 수분이었다.
발뮤다는 이 비결을 토스터 상단의 물을 붓는 5cc 용량 트레이로 구현했다. 잃어버릴까 겁나는 미니컵에 물을 받아 트레이에 딱 5cc의 물을 찔끔 넣어주면 된다. 박스를 처음 뜯었을 때 이 컵을 실수로 버리지 않게 조심하자. 극소량의 물이 빵에 스며 토스트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거냐고?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원리가 조금 다르다. 빵에 수분을 첨가하기 위한 물이 아니고, 빵을 더 빨리 구워 바삭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공기보다 물의 온도가 더 빨리 상승하기 때문이다.
5cc의 수분 덕에 빵을 굽는 온도가 더 빨리 상승해 스팀 속에서 빵을 구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빵 표면이 더 빠르게 바삭해지고, 빵 내부에 머금고 있던 수분은 덜 빠져나가게 된다. 게다가 정확한 알고리즘은 모르겠지만 이 똑똑한 토스터는 끝없이 혼자서 1분 단위로 온도 조절을 한다. 완벽한 굽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심지어 일본과 한국의 식빵은 두께나 식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온도 조절 소프트웨어를 한국 식빵에 맞게 다시 손봤다고 한다. 이를 테면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에서 파는 일반적인 식빵을 구웠을 때도 가장 맛있는 상태일 수 있도록 세팅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호텔에서 파는 요란한 빵이 아니어도(물론 그런 빵을 구우면 더 맛있겠지만) 충분히 완벽한 토스트를 완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설명은 이제 충분히 한 것 같다.
어서어서 빵을 구워보자.
일단 맛있는 식빵이 필수지. 앞서 언급했듯 신촌의 김진환 제과점에서 식빵을 공수해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식빵을 구우면 맛있어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약간의 페널티가 필요하다. 그래서 5일 동안 이 아름다운 식빵을 냉장실에 묵혀두었다. 상하진 않았지만, 실수로 비닐을 제대로 봉하지 않아 빵 한쪽 면이 뻣뻣하게 말라버릴 정도로 형편 없는 꼴이 되었다.
이제 발뮤다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식빵 페널티는 충분하다. 빵 위에 올릴 식재료도 이것저것 사왔다. 두둥. 죽어가는 빵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식빵을 썰어본다. 사진에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바싹 마른 빵이 빵가루를 흩날리며 썰린다. 마음이 아프다. 이 맛있는 식빵을 이 꼴로 방치하다니. 발뮤다 더 토스터의 심폐소생술이 먹힐 것인가. 말 것인가.
통통하게 자른 식빵 한 조각을 토스터 안에 넣고 다이얼을 돌린다. 처음엔 급한 마음에 버터도 바르지 않았다. 당연히 일반 토스트 모드를 선택하면 된다. 타이머를 3분 정도로 맞추고 기다린다. 아, 5cc의 물을 넣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시간이 조금 지나니 유리창에 뽀얗게 김이 서린다. 그리고 완성. 따끈한 식빵을 트레이에서 꺼내 반으로 주욱 찢었다. 방금 전의 그 죽은 식빵이 맞는가. 갓 구워서 진열돼 있을 때의 그 맛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겉은 얇고 바삭해 한입 베어물 때 느낌이 훌륭하며, 속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겉과 속이 너무 다른 간극이 훌륭한 맛을 이룬다. 그때부터 우린 미친듯이 식빵을 굽기 시작했다.
다음은 당연히 버터 토스트다. 가장 도톰하게 썰어놓은 식빵에 칼집을 깊게 넣은 뒤 실온에서 미리 녹여둔 버터를 부드럽게 펴 바른다. 그리고 구워주면 된다. 이번에도 토스트 모드로 3분 정도 구웠다. 아아아, 빵과 버터가 만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코를 기분좋게 자극하는 버터향에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식빵의 식감이 더해져 미친듯이 흡입.
이번엔 치즈! 에디터L이 센스있게 체다 치즈와 모짜렐라 치즈가 섞인 제품을 사왔다. 하얗고 노란 치즈 가루를 빵 위에 소복히 쌓은 후 토스터로 직행. 아아아, 치즈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는 마음이 애닳는다.
이거 정말 만들기도 간단하고 맛있다. 체다 치즈 덕분에 적당히 짭쪼름한 맛도 있고, 잘라서 한입 베어물면 치즈가 쭉쭉 늘어난다. 행복하다. 조금 더 치즈 표면을 노릇노릇하게 태워(?) 먹고 싶은 분들은 치즈 토스트 모드에 기본 명시된 타이머보다 30초에서 1분 정도 더 돌려도 좋겠다.
내친김에 식빵에 악마의 잼 누텔라를 펴 바르고, 슬라이스한 바나나를 올려 구워보았다. 보기에는 썩 예쁘지 않아서 일단 실망스럽다. 그런데 이건 진짜 사탄의 맛이다. 누텔라를 발랐으니 달콤하고 섹시한 맛은 기본이고, 그 위에 올라간 바나나의 풍미가 어마어마하다. 우린 토스터 내부의 강한 열기 덕에 바나나가 말라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바나나는 따끈한 잼, 혹은 푸딩처럼 촉촉하다. 누텔라와 식빵, 푸딩같은 바나나가 입에서 함께 녹아버린다. 사무실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던 레시피. 칼로리따윈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우린 프로니까.
식빵 말고 와플도 구워보았다. 버터를 한 조각 올려서 구웠는데 맛이 좋긴 하다. 솔직히 와플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그냥 먹어도 될 듯.
진짜 구워먹어봐야 할 것은 바로 크루아상이다. 뚜레쥬르에 파는 그냥(?) 크루아상도 발뮤다 토스터에 들어갔다 나오면 호텔 빵으로 변신한다. 괜히 발뮤다 토스터 다이얼에 ‘크루아상 모드’가 따로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속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온도와 표면의 색이 변하는 온도가 다른 빵이기 때문에 엄청난 온도 밀당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속살은 부드럽고 표면은 바삭바삭 입술을 간지럽힌다. 이것도 진짜 맛있어.
사실 토스터라는 기기는 마법을 부릴 순 없다. 기본 빵맛에서 어떻게 최고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 어여쁜 기기 안에서 1초 단위로 일어나는 디지털 연산과 복잡 미묘한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갓 구운 빵의 농염함을 가져다준다.
다른 토스터랑 다르냐고? 물론이다. 다르다 완전히. 모처럼 빠졌던 살이, 리뷰 후에 다시 통통하게 올랐다. 빵순이의 발뮤다 토스터 리뷰는 여기까지. 공식 사이트에는 더 다양한 레시피들이 있으니 ‘여기’로 구경가서 입맛 한번 다시고 오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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