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지 않은, 지나온 시절에 대한 고증(考證)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의 아픈 곳과 아쉬운 곳을 제대로 건들고 지나간다. 그 시대 유행 음악과 패션은 물론이고, 이제는 동네에서도 보기 어려운 사진관과 없어진 은행명까지도 말이다. ‘남편찾기’라는 시리즈 특유의 플롯을 위해 이야기 전개가 부실했고 캐릭터들의 개연성도 떨어졌지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판단력이 부족해서? 물론 아니다. 눈감은 것이다. 한 주 한 시간이나마 이상향에 다녀오기 위해.
하지만 1970년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80년대에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던 내 경험에 비춰보면 1988년은 사회 전체적으로 그렇게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경제성장률은 최고였다. 1986년 10.6%, 1987년 11.1%까지 올랐고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도 10.6%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듯 성장률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 민주화와 함께 노사분규란 단어가 당시를 표현할 때 동시에 쓰인다. 성장의 과실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던 과도기였기에 혼란은 불가피했다. 탈주범 지강헌 일당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은 그 시대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아직 더 성장할 수 있었고, 분배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바로 ‘응팔’의 인기 비결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키를 쥔 인물은 라미란이었다고 본다. 그는 ‘분배의 캐릭터’였다.
단칸방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라미란네는 얼결에 당첨된 복권으로 갑자기 큰 부자가 됐지만 졸부는 되지 않았다. 가난의 흔적인 쌍문동을 떠나지 않았고 이층집으로만 갈아탔다. 반지하 셋집엔 빚보증 잘못 섰다 어려워진 덕선이네를 들였고, 수학여행 보낼 덕선에게 쥐어줄 용돈이 없어 빌리러 갔지만 다른 말만 하고 돌아온 덕선 엄마를 불러 먹을거리 안에 말없이 돈봉투를 넣어준다. 아무려면 한두 번 도와줬을까. 그 사정 아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치킨을 시켰다 하면 10마리. 골목 모두가 먹는다. 고향 오빠 동생이면서 각각 배우자를 잃고 외롭게 사는 선우네와 택이네를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매파 역할도 한다. 그는 골목이 골고루 행복할 수 있게 안배한 캐릭터였다. 나 혼자, 우리 가족 살기도 힘들어 결론적으로는 이기(利己)가 최선의 삶의 방식인 지금, 그리운 건 그런 존재다.
그런데 아직도 성장과 부양을 얘기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3%대 성장하는 것을 저성장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러한 저(?)성장세는 오래갈 수도 있다. 그럴수록 사회 이슈는 양극화, 분배 문제에 쏠릴 수 있다.
최근 한 고위 정치인이 비공식 석상에서 한 얘기를 듣고 아연했다. “복지에 퍼주다 나라가 거덜나게 생겼다. 거지 되고 싶나”라고 했다. 복지는 퍼주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정부 용역으로 작성된 보고서에도 “장기적인 안목에선 공평한 분배가 성장지향적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올해는 가뜩이나 총선도 있다. 공평하지 않을수록 선거에서 포퓰리즘이 판을 더 치게 마련. 선거에 나설 분들 분배라는 키워드를 갖고 ‘응팔’ 한 번 깊게 보실 것을 권한다. 드라마가 민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