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국내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2015년)이다. 100명 중 겨우 5명만 육아휴직을 한다. 여성경제활동 참가율(57.8%, 2015년 10월 기준)이 높아지고 있고, 맞벌이 부부 비율 역시 증가하는 추세인데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 문화 탓에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사회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사단법인 ‘함께하는 아버지들’이 지난 11일 발표한 ‘육아휴가 및 휴직에 대한 인식과 실태’ 조사(전국 20대 이상 직장인 기혼남성 1000명을 대상)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 10명 중 7~8명이 육아휴직(72.8%)이나 출산휴가(82.7%)를 원하지만 △직장 내 눈치(47.3%) △인사상 불이익(31.4%) △회사 사정상 기회가 없어서(11.8%) 등의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에서 도입한 ‘아빠의 달’ 제도의 최대 수요자인 30대 기혼 직장 남성의 66.8%가 해당 제도를 아예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정책은 꽤 잘 갖춰져 있는 편. 현재 남성 근로자는 최대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아빠의 달’제도를 통해 한 자녀에 대해 부부 중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첫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까지 지원한다. 남녀 근로자 모두 육아휴직 대신 1년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주 15시간 이상 30시간 미만)을 할 수 있으며 고용부에서 단축된 근로시간에 따라 감소된 급여의 일부를 보전(통상임금의 60%)받을 수도 있다.
최근 정부는 출산·육아 정책과 제도를 소개하면서 ‘같이 낳았으니 같이 기르자’는 공동육아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아빠 육아휴직 체험 수기집을 발간했다. 부담스러운 사회와 조직의 시선 등을 무릅쓰고 아이를 기르기 위해 쉬었던 수기 공모 당선자 가운데 3명의 아빠를 만나 그들의 ‘육아휴직기’를 들어봤다.
세살배기 수발 들기에 ‘체력방전’…그만큼 아이와 돈독 ‘6개월 더’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는 이재완(34)씨가 남성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에 앞서 스스로 다짐한 말이다. 자신을 ‘사회적으로 대단히 평범한 사람’라고 소개한 그는 어디서든 튀지 않고 무던하게 살아 온 30대 보통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동갑내기 부부인데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3번이나 진급이 누락됐어요.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그 책임은 아내 혼자 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죠.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났고 부모님에게 짐을 지워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 봐주는 아주머니를 붙이기는 더더욱 싫었죠. 아내도 커리어에 타격을 입었는데 나도 포기하고 조금 내려놓고 살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씨는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이후 회사에 통보해야 하는 고비가 남아 있었다. 그간 회사에서 쌓아온 경력과 이미지가 달라지는 건 아닌지,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있지 않을지 불안했다. 사회 통념상 남성 육아휴직은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경주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해왔기 때문.
“회사에 말을 꺼낼 땐 이미 굳은 각오를 한 상태였죠.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육아휴직은 ‘허가’가 아닌 회사에 도의적 양해를 구하는 것뿐이더라고요. 법으로 보호되는 직장인 부모의 권리란 얘기죠. 하지만 형식적이나마 회사의 허락을 받으면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한 상태로 휴직하는 것이 좋죠.”
이씨가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세 살배기 딸의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한 것.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없었죠. 일주일에 5일은 외출했어요. 어린이 뮤지컬 보고, 공원 산책도 하고, 동물원과 키즈카페도 가고요. 그렇게 3개월쯤 지내니 동력이 떨어지더라고요. 반복되는 일상에 짜증도 나고 아내가 오면 바가지를 긁고 싶고 소위 주부 우울증이 왔죠. 숨겨진 애사심도 생겨요.(웃음)”
이씨는 가사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어보고자 밤에 게임도 하고 영화도 봤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체력적 한계는 다음 날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 살짜리와 34세가 싸우고 있더군요. 그래서 생활 패턴도 바꾸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놀이와 육아에만 집중했어요. 가사는 아내 몫이었죠. 아이를 좀 더 이해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됐고 아이가 밝아졌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아요.” 이 씨는 더 나은 ‘진짜 아빠’로 거듭나고자 남은 6개월을 추가로 사용할 계획이다.
아내 휴직 끝나갈 무렵 ‘바통 터치’…월 83만원 휴직급여 막막했지만
대전에 사는 강진형(37)씨는 두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의 휴직기간이 끝날 무렵 “그럼 앞으로의 육아는 누가 하느냐?”란 문제에 부딪혔고, 고민 끝에 자신이 육아휴직을 하는 길을 선택했다. 강씨는 육아휴직에 앞서 정부 지원 정책을 꼼꼼하게 알아봤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남성 육아휴직 가이드를 살펴보며 ‘아빠의 달’ 제도도 알게 됐고 정부의 지원이 가능한 건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남성들이 쉽게 육아휴직을 못 하는 이유가 경제적 문제 때문이죠. 휴직급여로 통상임금의 40%를 받지만 그 금액의 15%(약 15만원)는 직장 복직 후 6개월 후에 받아요. 복직 후 곧바로 퇴직하는 걸 막으려는 것인데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어야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적극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육아휴직과 동시에 강씨의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4세짜리 아들과 7개월 된 딸을 위해 요리하고 옷 입히고 이것저것 챙겨 어린이집 보내면서 3개월 정도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날마다 진땀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낮에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것에 대한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눈치가 보였죠. 실업자처럼 보더라고요. ‘남자가 밖에서 일해야지. 놀면 되냐’는 말도 들었죠. 편견을 깨려고 노력했어요. 어린이집 엄마들 단톡방(메신저 채팅방)에 참여하고 어울리면서 수다 떨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더라고요.” 어느새 강씨는 주변의 가정과 지인에게 아빠 육아휴직을 권유하는 홍보맨이 돼 있었다고 한다.
“역시 공무원” 주변 부러움 샀지만…현실 마주하니 육아는 ‘득도의 길’
울산동구청에 재직 중인 권성욱(41)씨가 두 살 된 딸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언하자 주변 친구들로부터 이 같은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세례를 받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권씨에게 육아휴직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공무원에게도 남성 육아휴직은 꿈같은 이야기인 건 마찬가지다.
“공무원 조직은 여느 사기업 못지않게 보수적입니다. 아무리 제도적, 법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한다고 해도 육아를 이유로 휴직한다는 건 ‘이단아’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여직원의 육아휴직도 몇 년 사이에 겨우 정착됐는데 하물며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이라니.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업무를 대신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권씨는 수개월 동안 직장 상사와 주변 동료에게 호소하고 설득해 1년간의 전업 아빠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초보 아빠들의 육아기를 보면서 ‘현실의 육아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육아기를 털어놨다.
“육아휴직은 결코 장기 휴가가 아닙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업무의 연속이죠. 주부가 얼마나 고달픈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오히려 직장인은 출근하면서 육아와 가사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죠. 회사에서는 자기 일만 하면 되거든요.”
아이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청소하고 뒤돌아서면 빵가루를 뿌리고 음료수를 쏟고 차고 있던 기저귀는 어느새 벗어 던진 채 바닥에 똥오줌을 줄줄 흘리고 다니니까 말이다. ‘참아야지’ 하면서도 이런 광경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빵’ 하고 폭발해버렸으면 싶을 때도 있었단다.
“아이에게 화풀이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며 스스로 달랬죠. 육아란 득도의 길인 것 같습니다.”
권씨는 정부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부분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급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한 달에 기저귀 값만 20만원입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돈이 아니죠. 다둥이 가정에 대한 지원도 저출산 해결을 위한 방안은 아니죠. 차라리 임신 중 초음파 검사(회당 15만원)와 산후조리원 비용에 의료보험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