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유리천장’ 걷히긴 커녕…다시 견고해졌다

입력 2015-12-08 10:34 수정 2015-12-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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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임원들 곧 대거 퇴진할 수도

금융권에 다시 유리천장이 드리우고 있다.

지난 2012년 말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금융계는 잔뜩 긴장했다. 임원(상무ㆍ전무ㆍ본부장ㆍ부행장)은 고사하고 간부(부장급)까지 오른 여성의 비중이 현저히 적다는, 공공연하나 별로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써 대강 가려졌던 사실이 대대적으로 드러날까봐서였다. 그래서 이후 여성 임원들이 하나둘 등장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집권 하반기에 들어서는 가운데 굳이 ‘여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 듯 은행권에서 하나둘씩 여성 임원들이 사라지고 있다. 산들바람에 불과했던 여풍이 멈춘 것이다. 잠시 소강상태인지 아니면 완전히 멈춘 것인지는 뚜껑을 더 열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 여성 대통령 시대 첫 여성 은행장 탄생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보자. 국내 시중은행을 통틀어 여성 부행장은 IBK기업은행의 권선주 부행장 1명 뿐이었다. 부행장으로 승진시키려면 그 아래 있는 상무나 전무, 본부장급이 많아야 하는데 이 자리에 있는 여성들은 거의 없었다.

IBK기업은행은 당시 설립 50여년 만에 첫 내부 승진자였던 조준희 당시 행장의 3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이 자리를 두고 처음에는 조준희 행장의 연임도 점쳐졌으나 점차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 인사들이 대거 거론되며 치열한 물밑 경합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연속해서 내부 승진 인사냐 아니면 이른바 ‘점령군’으로까지 불릴 수 있는 외부 인사가 수장이 될 것인지만 관심사였다. 결과는 내부 승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밖(?)이었다.

IBK기업은행 52년 역사상 처음이자 국내 은행권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행장이 탄생한 것이다. IBK기업은행은 정부 산하 금융공공기관이라 금융위원장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게 되는데,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은 권선주 행장을 제청했다. 은행 내부에서도 관료 출신 외부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오는 것보다 내부 승진을 원했고 35년간 IBK기업은행에서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땀 흘려온 권선주 행장 선임에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다소 인위적으로도 보이는 ‘여풍(女風)’이 잠시나마 불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외환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에서도 여성 부행장들이 탄생했다. 우리은행에서도 115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행장이 탄생했다.

◇ 유리천장엔 균열도 안 갔다?…우리은행 여성 부행장 없어져

그러나 올해 말 은행권 임원 인사에선 여성들의 약진은 커녕 퇴진만 돋보일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 말 임기 만료로 은행을 떠나게 된 김옥정 우리은행 부행장
▲올해 말 임기 만료로 은행을 떠나게 된 김옥정 우리은행 부행장
이달 초 먼저 단행된 우리은행 임원 인사에선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부행장 5명 가운데 2명만 자리를 지켰고 여성인 김옥정 부행장은 떠나게 됐다. 지난 1981년 입행 당시 95명의 동기 가운데 단 둘만 여성이었던 김옥정 부행장은 34년을 버티며 외환 사업, 영업, 자산관리(WM) 등의 분야를 다양하게 거쳤고 WM 사업단 상무가 된 지 1년 만에 부행장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부행장 역할을 해 온 2년을 끝으로 우리은행을 떠나게 됐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여성 부행장들의 경우 많은 이가 짐을 싸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소문이 이미 은행권 안팎에 돌기도 했다.

금융권에 오래 몸담아 왔던 한 여성 인사는 “공공연하게 임기가 끝나는 여성 부행장 자리에 남성이 내정돼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듣기도 했다.”면서 “여성이 어렵게 부행장 자리에 올랐다면 그 후속을 여성 후배가 맡게 하거나 아니면 연임을 하게 해서 여성들이 은행 임원직을 많이 맡고 있도록 하는 것이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길일텐데, 이제는 정부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것인지 다시 과거 남성 중심의 문화로 다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은행들도 대개 이달 안에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임기가 끝나는 여성 임원은 KB국민은행의 박정림 부행장이 있다. 역시 리스크 관리 업무를 맡아왔으며 지난해 말 인사폭풍 속에서 절반 이상의 부행장들이 짐을 쌌을 때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박 부행장에게는 어떤 결정이 내려질 지 주목된다.

▲박정림 KB국민은행 부행장
▲박정림 KB국민은행 부행장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보, ‘리틀 권선주’로 불리는 김성미 IBK기업은행 부행장, 강신숙 수협은행 부행장 등이 임원으로 활동중이며, 외국계 은행에선 박현남 도이치뱅크 한국 대표, 고금란 유니크레딧 은행 한국 대표 등이 있다. 이렇게 외국계 은행에선 대표직까지 여성이 오르고 있는 반면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에선 여전히 간부 이상의 여성이 배출되지 않고 있다.

기관 쪽에서는 3년 임기의 절반 가량을 보낸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한은 내 최고직에 오른 여성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금융감독원에서는 오순명 부원장보, 김유미 선임국장이, 그리고 오랜 금융계 경력을 바탕으로 여성금융인네트워크(여금넷)를 만들어 지난 10여년간 여성 금융인들의 돈독한 연대를 꾀하고 있는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겸 여금넷 회장 등이 있다.

한편 생명보험사와 카드사 등에서 먼저 인사가 난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카드의 이인재 전무, 박주혜 상무. 그리고 삼성생명의 쟈넷최 상무와 노차영 상무는 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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