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누리과정 예산편성 갈등을 보며

입력 2015-11-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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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내년 보육대란은 일단 임시변통으로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서울시 등 14개 지자체가 정부와 시·도교육청 대신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일단 급한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다. 일부 3개 시·도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없이 내년 본예산을 수립했고, 예산을 배정한 지자체도 집행을 위해서는 교육청이 누리과정을 세출예산으로 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자체가 당장은 임시변통하더라도 교육청과의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한 갈등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계속 증폭되어 온 측면이 있다. 보수 대통령의 중앙정부와 진보 성향의 시·도교육감 간의 대립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나는 갈등의 주된 이유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 나름의 논리와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육정책이 갖는 연관효과와 파급력을 살펴봄으로써 정부의 결정이 어떠해야 합리적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검토할 때, 누리과정 사업이 갖는 의미와 그 방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학자들에 의하면 한 나라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 출산율’은 1.8명이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인구대체 출산율’은 2.1명이다. 그런데 한국은 1983년 2.06명을 기록한 이래 지난해까지 1.29명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은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2031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는 등 생산 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절벽’ 시대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이나 남북통일과 같은 특단의 변화가 없다면 한국은 2031년부터 인구가 줄어들어 ‘국민 없는 대한민국’이 현실화할 수 있다. 특히 병역자원의 감소로 국방체계가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되어 외국인 용병을 수입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생산인구의 감소와 숙련 노동자의 고령화로 국가 재정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2월 발표한 ‘2014∼2016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실질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2060년에는 0.8%까지 떨어진다. 그리고 현재의 세입구조와 세출 관련 법령이 계속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현재와 같은 저출산이 지속할 경우 2033년엔 국가의 파산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처럼 저출산이 야기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우리 사회 저출산의 사회문화적 원인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일자리, 주거, 육아다. 장기적 재무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3포)하게 된다. 또 어렵게 취업을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비와 육아문제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것이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정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국민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의지를 가지고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누리과정에 대한 정책도 보육복지의 관점이 아니라 현실화하고 있는 저출산 위험의 해소와 지속 가능한 공동체 형성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2020년까지의 5년은 우리나라 인구위기 대응의 ‘골든 타임’이다”고 말했다. 옳은 인식이다. 정말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누리과정 예산을 자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무상복지’라는 정치적·이념적 비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지속적 경제성장의 토대를 상실하는 것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 용기 있는 정책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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