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국화)이 피고 나면 더 피는 꽃이 없다[此花開盡更無花]. 서리와 추위에 굴하지 않는 국화는 오상고절(傲霜孤節), 상풍고절(霜風孤節)의 꽃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보(李廷輔·1693~1766)의 시조에 나온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시에 ‘뜰 앞의 국화를 탄하며’[庭前菊花嘆]라는 작품이 있다. 전체 26행 중 끝 부분 8행을 인용한다. “꽃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아름다운 그 마음을 나는 사랑하네/평생 술 마시지 않으나/널 위해 한 잔은 들겠고/평생 이를 보이고 웃지 못하나/널 위해 한바탕 웃으리/국화는 내가 사랑하는 꽃/복사꽃 오얏꽃도 보기 좋다네”[花雖不解語 我愛其心芳 平生不飮酒 爲汝擧一觴 平生不啓齒 爲汝笑一場 菊花我所愛 桃李多風光]
많은 이들이 국화가 거만하다고 할 때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은 다른 말을 했다.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에 실린 글이다. 순원은 그 집안의 정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국화는 사양하는 정신에 가깝다. 봄과 여름이 교차할 때 온갖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다투지만 (중략) 국화는 입 다물고 물러나 있다가 여러 꽃이 마음을 다한 후에 홀로 피어 풍상에 꺾이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니 양보하는 정신에 가깝지 아니한가.”[而以余觀之 菊近於讓也 當春夏之時 百花奮英 紅紫相競 (중략) 菊含嘿殿 獨發於 羣芳盡意之後 不以風霜摧剝爲苦 其不幾於讓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