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이 있는 작가가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책’ 저자 김용규의 전작인 ‘생각의 시대’를 인상적으로 읽었던 탓에 이번 책에도 기대가 컸다. ‘데칼로그: 김용규의 십계명 강의’(포이에마)는 끊임없이 욕망과 초조함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지혜서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비슷비슷한 증세를 앓는 경우가 많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고 있지만 삶에 진정한 안식을 얻기가 힘들다는 사실 말이다. 안식 없는 삶의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길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철학과 신학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기독교 신자가 읽는다면 신앙의 토대를 탄탄히 할 수 있는 책이다.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경의 신명기와 출애굽기에 잘 제시되어 있는 십계명을 안다. ‘~하라’ 혹은 ‘~하지 말라’로 구성되는 십계명을 대부분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도덕률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책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십계명은 인간은 구속하기 위한 율법이나 도덕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십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말한다.
“십계명은 탐욕이라는 족쇄로 옭아매어 결국에는 파멸로 이끄는 ‘죄(罪)의 마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게 해주는 ‘열 개의 열쇠’라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십계명 안에는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선포했던 바로 그 자유에서 오는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음을 이내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더하게 하는 것은 폴란드가 낳은 천재 영화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가 각 계명을 주제로 만든 열 편의 연작 영화 ‘데칼로그’를 매개로 삼아 십계명을 찬찬히 파헤치고 있다. 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가 이어지면서 책은 각각의 계명마다 한 장이 할애되는데, 각 장은 영화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십계명의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설명도 독특하지만 영화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은 것도 독창적이다.
이 책이 필자에게 더욱더 호소력이 큰 것은 50대를 넘어서면서 인간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참다운 평강을 얻기 힘들다는 결론을 얻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종교가 없습니다”라고 외칠 수는 있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돈, 명성, 권력, 성취, 자아 등을 자신의 유사 종교로 삼아 살고 있을 것이다.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인간은 자신을 인도할 만한 새로운 신을 찾지 않고선 배겨날 수가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탐욕과 욕망 때문에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리게 된다.
누가 이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존재’와 ‘존재물’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존재물’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스스로 자신을 ‘존재’라고 밝힌 신이 백성들에게 ‘사회적 자유’보다 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인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주장한 것임을 밝힐 것입니다.” 신학적, 철학적 그리고 자기계발서적인 색채에 잘 버무려진 책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가 쓴 훌륭한 책이다. 강력 추천이란 표현만으로 충분치 않은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