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월 배임죄 처벌 규정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배임의 성립 요건으로 ‘목적성’과 ‘현실적 손해’를 추가했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배임죄로 처벌하면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게 정 의원의 설명이다. 이러한 개정안은 재계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경영 판단의 원칙’이 반영된 것이다.
대법원은 2004년 대한보증보험이 한보그룹에 특혜성 보증을 섰던 사건에서 “기업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경영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기업 이익에 합치한다고 믿고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결과적으로 기업에 손해가 발생해도 배임죄로 벌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대한보증보험 경영진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우리 법원이 이 원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경우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 원칙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김 회장 측은 계열사 부당지원 등 배임 혐의에 관한 일련의 행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대규모 기업집단 내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계열회사의 일방적인 희생 하에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불법적인 지원 행위를 지시하게 되면 ‘경영 판단의 원칙’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배임죄로 처벌된다”고 판시했다.
재계에서는 배임죄의 요건이 모호해 검찰의 기소 여지가 지나치게 넓으므로, 상대적으로 경영 판단의 원칙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업 전략을 세우고,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배임 위험을 의식하면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와 기업 환경이 판이한 독일이나 미국에서 형성된 이론을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소수의 재벌이 문어발식 구조로 다수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주체에 형사 제재를 가할 필요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다수의 법학자들과 실무자들은 아무리 경영자가 선의의 판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소액주주 등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를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