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북한이 9·19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하더라도, 9·19 합의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른 상황이 계속되는 한 북핵 문제는 한 걸음도 진전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북핵 폐기는 분명한 개념이지만 중국과 북한이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란 개념을 사용하는 이상 그 해석은 천양지차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세 차례나 핵실험을 계속해온 북한의 핵무기와 핵시설 폐기가 한반도 비핵화라고 보고 있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 폐기와 함께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보장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라고 보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 조건에 맞게 미국은 한반도에 ‘평화체제’을 만들고 미·북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 한반도 비핵화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더 명확히 하면,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청산하고, 북한에 대한 주권보장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위협이 되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것에 목표가 있다.
앞으로도 한·미는 북한이 개발해온 핵무기 폐기라는 ‘북핵 폐기’에 초점을 맞춘 9·19 이행협상이지만, 중·러·북은 한·미 연합훈련 폐지는 물론, 주한미군 철수 계획과 연계시킨 북핵 폐기를 목적으로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목표는 ‘북핵 폐기’를 넘어 미군이 한반도에 더 이상 주둔하지 않게 되는 것을 ‘한반도 비핵화’라고 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6자회담과 9·19 합의 이행을 말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러는 북한 핵의 폐기와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를 패키지로 묶어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과거 ‘한반도 비핵지대화’ 전략에서 한 걸음도 벗어난 적이 없다. 북한 핵무기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폐기시킬 전략적 수단이자 협상 대상으로 활용해온 것이 지난 20년간의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 간의 대결의 본질이다.
중국과 북한은 2005년 9·19 합의문도 그 전략에 맞춰 만들어 놓고 해석한다. 북한의 핵 폐기 입장을 밝히면서도, 동시에 미국은 북한 주권을 존중하고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든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미·북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명기해 놓았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어야 하고, 한국은 북한에 200만kw의 전기도 송전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을 근거로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에 대한 주권 존중과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대북 위협에 해당되어 9·19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2006년, 2009년, 2013년 핵실험을 지속해 왔다. 나아가 미국까지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인 대포동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 핵전략을 함께 관리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외부 세계를 대상으로 해서는 마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략을 통제할 수 없는 북한의 고집과 집념 때문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동시에 한·미 군사동맹을 폐기하고,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 전략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 전략을 공동 구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북한을 엄호하고 있다.
결국 지난 20년간의 핵 협상이란 ‘북핵 폐기’냐, 한·미동맹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시키는 ‘한반도 비핵화’냐의 대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 간이든 미·중 간이든, 한·미동맹 폐기와 미군 전력의 철수를 연계시키는 것이라면, 6자회담과 9·19 합의의 재확인이란 게 그 어떤 진전도 아니다. 그런 협상과 대화는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 수준과 능력을 진전시키고 협상력 제고를 위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9·19 합의이행을 재논의하는 과정에서는 북핵 폐기의 대가는 오직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및 국제사회로의 복귀 지원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전제로 한 6자회담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또다시 북한의 핵무기 역량과 협상력의 강화를 돕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