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교육부여, 총장 선출은 대학에 맡겨라!

입력 2015-10-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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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200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 방문교수로 머무는 동안 ‘I ♥Shirley’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캠퍼스를 바삐 걸어가는 여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다. 티셔츠에서 지칭하는 셜리(Shirley)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프린스턴대학교의 제19대 총장을 역임한 셜리 틸만(Shirley Tilghman) 총장이다.

한국 대학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능한 총장’, ‘총장 사퇴’ 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하며 사랑받는 틸만 총장의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대학 총장들도 ‘사랑받는’ 총장이 될 수 있을까?

독일 자유베를린대 요한 빌헬름 겔라흐 전 총장은 “대학의 본질은 자유와 비판”이라고 단언했다. 대학에서 자율성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의미다. 그의 말처럼 대학은 지적 욕구를 억압하던 중세의 종교적 굴레를 깨며 이른바 ‘성스러운 무지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태어났다. 그래서 당시 대학은 만인에게 열린 배움의 공동체, 교수와 학생의 자치공동체였다.

물론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오늘날의 대학에는 새로운 과제와 사회적 요청이 부여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유와 비판, 진리 추구라는 대학의 존재 이유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 부산대의 고 고현철 교수는 대학의 총장 선출방식에 대한 교육부의 부당한 간섭에 자신의 생명으로 항의했다. 총장 선출이 단지 ‘총장’을 뽑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학문의 자유를 담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학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익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학문의 자유를 헌법 제22조를 통해 보호하고 있으며 헌법 31조 4항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해 대학의 자율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서 대학의 자율이라 함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업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사항은 가능한 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함을 의미한다. 대학이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학문의 자유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기에 대학의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헌법적 가치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출한 총장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게 되며, 그러한 정당성은 선출된 총장이 학자로서의 양심에 따라 대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힘이 된다. 또한 대학의 자율성이 담보된다면 총장은 더 큰 신뢰를 바탕으로 보다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런데 대학정책이 실효적 성과를 내기에는 4년의 총장 임기는 짧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대학과 연구기관 수장의 임기가 10년 이상이고 심지어 종신직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을 보더라도 대학이 제대로 운영되기에는 우리의 총장 임기가 얼마나 짧은지 알 수 있다. 틸만 총장이 자신의 정책을 자신 있게 펼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탄탄한 지지, 그리고 장기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임기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대학의 총장 선출방식은 학교 구성원 간의 소통 방법이자 스스로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내는 방패이며, 교육의 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눈치 보지 않고 장기적인 정책을 펼 수 있고, 우리의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한국의 대학에서도 자율성이 지켜지고 총장의 정책이 학생들로부터 응원받는 모습을 볼 수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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