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정치는 정치인에게, 금리는 한은에게

입력 2015-09-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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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 장관이 여당 국회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선” “필승”이라는 건배사를 외쳤다 한다.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까지는 금리를 올리면 안 된다”는 식의 메시지가 조만간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장에서는 대통령이 금리 정책방향에 대해 직접 언급한 일이 있었다. 금리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금리 인하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한 것이다. 원론을 얘기한 것이겠지만 이는 금리 인하를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즉시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나의 기억으로는 금리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과거에는 장관이나 경제수석이 언급하는 정도였는데, 현 정부에서는 장관뿐 아니라 여당 대표,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리를 내리라는 ‘지침’을 거리낌 없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의 금리 인하 압력이 이렇게까지 전방위적이고 노골적인 경우는 이 정부가 처음인 것 같다.

지난 4년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계속 내리기만 했다. 2011년 6월 말 3.25%였던 기준금리가 지금 1.5%로 내려와 있으니 반토막도 안 된다. 한국은행이 정부와 정치권의 금리인하 압력에 굴복한 결과로 보고 싶지는 않다. 경제여건에 대해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분석 끝에 도달한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너무 낮은 금리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낮은 금리의 가장 중요한 부작용은 신용버블이다. 미국도 유럽도 신용버블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고, 아직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새로운 차원의 경기침체에 들어가고 있으며, 미국은 금리를 인상하려 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금리가 올라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져 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오로지 경기부양을 위하여 국내 금리를 계속 내리기만 했다. 신용버블을 부추기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위험수위를 넘어 자꾸 커져만 왔다. 더욱이 가계대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이용자의 76.4%(2014년 12월 기준)가 변동금리를 선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정상화는 극히 어렵다. 단기 부양에만 매몰되기 쉬운 정부 또는 정치인에게 중·장기 금리 정상화를 맡길 수 없음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금융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각국이 금리 결정을 중앙은행에 맡기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한국은행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정치권의 압력은 내년 총선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바로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총선 국면보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의 압력은 더욱 거셀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행은 이와 같은 정치권의 압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관점에서 모든 경제 환경을 검토한 후 금리를 내릴지, 올릴지 또는 그대로 둘지를 판단하고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법적 독립성은 이미 오래전에 확보됐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 생각 없이 굴복한다면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해준 국민들의 뜻을 저버리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정부와 정치권에도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한국은행에 “금리를 내려라” 또는 “금리를 올려라” 하는 얘기는 그만 했으면 한다. 현재의 국내외 경제 환경은 살얼음판이다. 정치적 판단은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정치적 이해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고 한국은행이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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