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선진화 앞당긴 농산물 ‘정가·수의매매’

입력 2015-09-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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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협의로 가격·물량 조절…생산·도매·소비자 모두 ‘윈윈’… 작년 5대 채소 가격변동 14%→9.8%

출하자(생산자)와 도매법인 구매자,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가 유통의 선진화를 앞당기고 있다.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욕구도 다양해지면서 농산물 유통 경로간 경쟁이 심해지는 추세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가 크게 성장하고 산지 조직화도 많이 이뤄지면서 농산물 유통 거래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농산물 유통 개선 과제로 농산물의 높은 가격변동성에 주목했다. 농산물이 봄의 이상저온, 가뭄, 장마 등 공급 충격에 취약한 특성 탓도 있지만, 단기 수급만을 반영하는 도매시장의 경매가격이 시장의 대표가격으로 작용하는 경매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30년간 자리매김해 온 경매제도는 가격과 거래 상대방이 모두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매법인이 생산자(공급자)와 중도매인(수요자)간에 거래를 중개하는 제도다. 거래 과정이 공정하고 물량과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장점으로 농산물 거래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출하자(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당일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므로 가격의 오르내림이 심하다는 점이 한계다.

이를 보완코자 정부는 가격을 정하고 거래(정가)하거나 상대를 정하고 거래하는 방법(수의)을 지난 2012년 8월 도입했고, 2013년 5월 발표한 농산물 유통구조개선종합대책의 하나로 본격 추진했다.

최근 정부의 제도 정착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 실제 정가·수의매매 비중은 도입 당시 8.9%였다가 올해 7월 현재 16.8%로 2배가량 늘었다. 정부가 내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20% 목표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체계적 수급관리와 정가수의매매 확대로 시장의 농산물 가격 변동성도 대폭 완화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5대 채소 가격변동률은 2012년 14.0%에서 2013년 12.9%, 지난해 9.8%로 줄었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가락시장 내 도매법인 동부팜청과는 평상시는 물론 혹한기, 혹서기 등 가격 등락폭 상황에서 특정시기에 고정단가를 적용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수급 시스템을 실현했다.

청상추의 경우 지난 7월14일부터 16일까지 경매 최고가격이 1만6300원에서 2만6000원으로, 다시 1만6500원으로 하루 사이에 60% 이상 등락하는 장세였음에도 공급가를 1만500원으로 유지했다.

동부팜청과는 전자거래를 통한 정가·수의매매로 산지에서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자체 물류센터로 직송해 검품·검수·분류 등을 실시한 뒤 각 점포로 바로 공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총 3억5450만원을 납품했다.

중앙청과의 사과 정가·수의매매 사례도 한 예다. 계획적인 출하를 통한 안정적 가격 형성과 산지·소비자간 신뢰 구축으로 올해 상반기 사과 거래실적이 직전연도보다 약 6억원이 늘었다.

정가ㆍ수의매매는 출하자의 가격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거래 당일 수급 물량에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정적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협의를 통해 사전에 가격과 물량을 조절하므로, 계획적인 판매와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거래하므로 경매 거래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출하자에게는 계획생산과 맞춤형 판매를, 중도매인에게는 물량의 안정적 확보를, 도매법인에게는 경매시간 단축과 정책자금 등 인센티브를 준다.

특히 실수요자인 최종 소비자들은 가격이 치솟거나 곤두박질 치는 가격변동폭 없이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되는 셈이어서 신뢰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정가ㆍ수의매매가 우리 농업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라도 충분조건으로는 부족하다.

중도매인이 기대한 상품의 품질이 실제와 다르다면 거래 내용을 수용하지 못해 가격 협상이 깨지는 상황도 종종 일어난다. 경매사의 중재와 조율이라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셈이다.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도매법인이 산지별 농산물의 특성과 출하능력 품질 등을 파악하는 등 산지 영업활동을 크게 강화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영세소농의 경우 정가ㆍ수의매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대규모 수요를 감당할 만큼 규모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해결 과제다. 반면, 대형유통업체는 정가·수의매매를 선호하고 있어 이런 유통 환경의 변화 속도를 고려하지 않으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 정가·수의매매로의 이동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도매법인의 겸영사업 확대, 중도매인 간 단계적 거래 허용 등 규제완화를 통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정가·수의매매로 거래된 농산물에 대해서는 시장사용료를 거래금액의 0.5%에서 0.3%로 인하하고, 시장 내 저온창고 시설사용료를 없애는 시장 활성화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시장 종사자들의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기 위한 교육과 홍보를 하고 있으며, 출하자와 중도매인이 실시간으로 거래정보를 공유하는 예약거래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올해 5월 개시했다.

송기복 aT 유통조성처장은 “정가·수의매매가 전반적인 시장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정가·수의매매가 도매시장의 거래제도로 안착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교육, 홍보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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