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진의 이슈通] 바빠진 기업 대관팀

입력 2015-08-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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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 산업1팀장

“휴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꿉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모 대기업 대관(對官)팀 간부는 직장인들이 1년을 꼬박 기다려 떠나는 여름 휴가는 그저 다른 사람 얘기일 뿐이라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기업은 모두 대관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관팀의 주요 업무는 국회, 정부,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상대하면서 해당 기업의 소통 창구가 되는 것입니다. 정보 수집은 물론 로비스트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입니다. 특히 맡겨진 임무는 꼭 완수하고야 만다는 각오로 움직이다 보니 ‘별동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모르니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관팀이 유독 바빠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국정감사로 인해 소위 정치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9~10월이죠.

그런데 올해는 벌써부터 국회에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번 국감이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인 만큼 기업들이 대관팀을 풀가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만만한 기업인들을 재물로 삼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정책 감사가 되어야 할 국정감사는 기업 감사가 된 지 오래입니다. 19대 국회는 2012년 첫 국감에서 164명, 2013년엔 사상 최대인 196명의 기업인을 증인대에 세웠습니다. 2013년 당시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 “역대 최악의 기업 감사”라고 비판할 정도로 재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3년 국감 이후 국회 안팎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자 지난해엔 ‘여의도 1번지’를 찾은 기업인 수가 그나마 약간 줄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공산이 커 보입니다. 최근 여당의 원내대표가 “문제가 있는 재벌 총수는 국감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선전포고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재벌 개혁’을 부르짖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발언이 최근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상잔’의 민낯을 드러낸 롯데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대체적이지만, 기업들은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근래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만 보더라도 무조건 기업인부터 불러내고 보려는 정치인들의 갑(甲)질이 여전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기업들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감장에 기업인이 출석해도 제대로 된 감사는 진행되지 않기 일쑤입니다. 해명은커녕 제대로 된 발언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몇 시간 동안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사선에서 분초를 쪼개며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인들은 그야말로 천금과 같은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하는 꼴입니다.

각계각층에서 경제 회복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호통 국감’, ‘생색내기 국감’이 재현돼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국민은 더 이상 인기 영합적인 국감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진짜 그만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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