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연출, 연기가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며 시장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혹자는 호남권 기반의 주택건설사 오너로만 알려진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이 거물급 기업인으로 등장한 사연을 이렇게 말한다. 사실 금호산업 인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김상열 회장의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은둔의 경영자란 세간의 평가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금호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유력 후보자로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180도 달라졌다. 자고 나니 유명해진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금호산업 인수전 이슈 메이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상의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김 회장은 28일 저녁 채권단이 그가 제시한 6007억원의 입찰가를 받아드리지 않으면서 이번 인수전에서 퇴장했다. 김 회장은 잃을 게 없는 승부수를 던졌다. 금호산업 인수를 통해 전국구 경영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아쉬움보다는 이만하면 남는 장사가 아니였는지 모른다.
금호산업 본입찰이 마감되자 시장의 관심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쏠렸다. 김 회장이 채권단 측에 예상치보다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면서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결국 금호산업 지분 매각작업이 다시 표류하게 되면서 김 회장에 대한 시장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꺼졌다.
그러나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복심(腹心)이다. 그는 본입찰 하루 전인 27일까지도 4000억원의 인수금융 주선 등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重義的) 행보를 보이며 막판까지 치열한 수 싸움을 전개했다.
반면 그가 제시한 6007억원의 입찰가는 사실상 인수 포기로 해석되기 충분하다. 입찰가 필수요건인 채권단이 수긍할 수 있는 가격, 그리고 박 회장을 따돌릴 수 있는 가격, 어느 하나 충족하지 못했다.
본입찰 당일인 28일 오전 호반건설 중역회의에서는 5000억원에서 1조원대까지의 입찰가를 놓고 가상 시나리오가 전개됐다. 회의 결과 탐나는 매물이기는 하지만 인수 후 후폭풍을 고려해 7000억원 이상은 절대 안된다는 의견으로 좁혀졌다는 후문이다. 최종 입찰가는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김 회장이 직접 빈칸을 채웠다. 회계자문을 맡은 한영회계법인에서 보수적인 실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것도 한몫했지만, 어찌됐건 최종 결정은 김 회장 몫이었다.
당초 채권단은 입찰 제시액이 8000억원만 확보되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김 회장이 6007억원을 제시한 것은 발을 빼겠다는 의지로 대변됐다. 인수전이 후반에 접어들면서 김 회장의 완주 의지를 의심하는 시각은 적었다. 그러나 끝까지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이번 인수전을 바라본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회장이 이번 인수전에서 퇴장한 뒤에도 시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김 회장의 진정성 있는 목적을 알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금호산업 인수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해 시장의 해석에 떠밀려 따라가야 했던 것인가. 아니면 그룹 재건을 위해 절치부심했던 박삼구 회장의 매니토(manito)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