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지난 2013년 CSR 활동 의무화를 담은 회사법 개정안을 공시했다. 매출액 100억 루피(한화 약 1800억원) 이상, 자산 50억 루피 이상, 순이익 5000만 루피 이상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직전 회계연도 3개년 평균 순이익의 2% 이상을 사회적 책임 활동에 사용해야 한다. 사용 내역을 공시하는 것은 물론, 사용 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 이유를 함께 알려야 한다. 당시 인도 상공회의소 마리와라(Mariwala) 회장은 “CSR 의무화는 비생산적이며 기업들은 이를 회피하려 할 것”이라고 반발했고, TVS그룹 베누 스리니바산(Srinivasan) 회장은 “CSR 의무화는 또 다른 형태의 세금이 늘어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법시행 10개월여가 지난 현재 주목되는 건 인도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다. 마하라슈트라주에 있는 뿌네(Pune)시는 지난해 12월 “기업이 사회적 이슈를 직접 다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바 바굴(Bagul) 부시장은 “오래된 주택보수, 물 저장탱크 유지보수,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제공 등에 기업의 CSR 활동 예산이 쓰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상업 중심지 뭄바이시는 이미 도시프로젝트를 위해 기업들로부터 CSR 펀드를 받아 사용 중이다. 인도의 공인회계사협회(ICAI)는 CSR 인증코스를 만들어 회계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8만5000여 명이 CSR 인증코스를 이미 이수했다. 인도에서는 극빈층 근절을 위한 노력, 교육사업 및 교육여건 개선, 성별격차 해소 및 여성 인권 보장, 아동 사망률 감소 및 산모 건강 증진을 위한 활동, AIDS 등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 환경보호, 취업지원을 위한 직업교육지원, 사회적기업 지원, 인도 정부가 설립한 사회적책임 관련 펀드 기부 등이 모두 CSR 활동으로 인정된다.
과연 인도 기업들의 반응은 어떨까. 인도정부의 기업부는 첫 해 실적이 기대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개정 기업법 효력 발생 전까지는 1만2000여개 기업들이 1000억 루피 이상을 CSR 활동비로 지출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난해 10월쯤 점검해보니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기업이 500억 루피 정도를 쓸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순이익의 2%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 사유만 공시하면 처벌하지 않으니 기업들은 선뜻 나서기보다 다른 기업들 눈치를 살핀다. 이에 따라 기업부는 기업들이 2년 이상 무책임하게 대응할 경우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인도가 이렇게 회사법을 바꿔가면서까지 기업에 CSR 활동을 요구하는 이유는 마하트마 간디의 신탁사상((Trusteeship)에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부 가운데 최소한을 제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탁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와 지역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설파한 간디의 뜻에 따라 기업과 기업인이 행동에 나서는 문화가 형성됐다. 인도 인구의 70%가 빈곤층이란 점에서도 ‘나눔 정책’은 기업 생존에 필수요소다. 10년간 장기 집권했던 만모한 싱 총리가 지난 2007년 부의 재분배와 삶의 질 개선, 환경 보전, 부패 일소 등에 역점을 두는 ‘포용성장’을 내세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5월 친기업 성향의 BJP당이 집권하고 나렌드라 모디(Modi)가 새 총리로 당선된 후 “기업들이 빈민가,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이를 CSR 활동으로 인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도로 안전운행 홍보활동, 운전교육 지도관 파견, 법률 및 의료지원, 지역 개발, 빈곤층 주민들에 무료점심 제공 등도 CSR 활동으로 인정했다. 모디 정부는 ‘제조 강국’을 목표로 외국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CSR 관련 규제는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1차적으로 인도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신경쓸 사안이다. 그러나 지금 주목할 것은 CSR 요구가 인도를 뛰어넘어 글로벌시장 전체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국가 전체적으론 공공부문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을 기업이 대신하는 구조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