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론 지난 2000년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신자유주의에 쏠려 있었다. 개방, 자유화, 민영화, 탈규제, 탈복지 등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급물살이 논의의 핵심 주제였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현장에서 ‘반(反)세계화’를 외치던 시위대의 모습이다. 시위 때문에 일부 세션이 취소되는 등 몸살을 앓던 현장에서, 김영삼 정부 이래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기던 우리 상식을 되돌아봤다. 시위대가 가진 철학이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다보스는 우리가 세계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기회를 주는 소중한 자리였다.
2015년 다보스포럼은 세월이 흐른 만큼 다루는 주제도 15년 전과 사뭇 다르다. 포럼에 앞서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내놓은 2015년판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는 앞으로 10년 내에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위기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대로 세계경제포럼은 현존하는 최대의 위기로 국제적 갈등을 꼽았다. 그러나 실제 주목할 부분은 바로 다음에 자리 잡은 ‘기후변화’다. 6위 자연재해, 7위 기후변화 대응 실패, 8위 물 위기 등이 뒤를 잇는다. 리포트는 “생물 다양성 상실은 더 이상 부차적 이슈가 아니다. 경제개발, 식량위기, 물 안보 등과 직결돼 있음을 의사결정권자들이 깨닫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환경적 리스크가 경제적 리스크를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위기보다는 기후변화 같은 도전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은 “많은 기업들이 해수면 상승, 빙하 해빙, 해수 온난화, 극단적 기후 등의 명백한 증거를 보고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다보스포럼이 이렇게 현실과 해법을 고민하는 동안 우리는 그런 리스크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의 자산운용그룹 악사의 자회사 AIM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이제 기업의 평판 리스크와 동의어가 될 것이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재무적 리스크와 함께 기후 리스크도 잘 따져야 한다. 기후변화는 훌륭한 재무성과를 가져다 줄 투자 기회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엔 “친환경 기술 분야의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이 담겨 있다. 실제로 친환경 프로젝트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그린본드(green bond) 시장의 규모는 올해 1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1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새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창업자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정통한 외국 매체들은 최근 친환경 혹은 혁신적 창업 분야에서 주목할 최신 사례들을 쏟아내고 있다. 모두 기후변화에서 파생하는 문제와 연관된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한 결과다. 몇 가지만 간략히 소개한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소개된 ‘스마트 스쿠터’는 전기 오토바이의 일종이다. 당연히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다 쓴 배터리는 충전할 필요 없이 고스테이션이란 곳에서 6초 만에 새 배터리로 갈아끼우면 된다. 30가지 센서가 탑재돼 있고 인터넷 클라우드 접속도 가능하다. 신발에 동여매는 두 짝의 언더슈즈는 어떤가. 프랑스 기업 롤커가 올 연말 시판에 나설 이 장치를 사용하면 시속 11km로 걸을 수 있다. 공항에서 보는 무빙워크를 신발에 장착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캐나다 스타트업 TZOA의 ‘웨어러블 환경 추적기’는 공기 질을 측정하는 장치다. 기온과 습도, 자외선 양도 측정해 주는데 옷이나 가방에 간단히 끼우는 방식이어서 사용이 쉽다. 이 기기는 스마트폰을 통해 공기의 질을 알려 주고, 그 데이터를 이용해 도시 전체 거리의 공해지도까지 작성해 준다. 공기가 나쁜 지역을 피해 다닐 수 있는 셈이다.
전 세계가 위기라고 목청을 높이는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 건 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