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기업들의 CSR 활동에 어떤 진전이 있었을까. 아쉬움이 적지 않다. 물론 상당수 기업들은 단순한 기부나 봉사활동의 틀에서 벗어나 기업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종류가 많아지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1년 전과 비교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따져 보면 한계가 느껴진다.
우리 기업들이 연말을 맞아 CSR 측면에서 고민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보여주기식 CSR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겠다. 화려한 포장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야기인데, 대표적인 게 바로 CSR 보고서다. 기업마다 사회공헌 보고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내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가장 큰 문제는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뻔한 이야기들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극소수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 줄 장문의 보고서를 만드느라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인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일부 기업들은 CSR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회사들에 보고서 작성을 대신 해 달라며 부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올라와도 봉사활동의 나열일 뿐, 기업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기업이 CSR 활동을 통해 재무적, 사회적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앞서가는 기업을 본받자는 공유의 개념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왜 작성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헛수고를 계속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흥미롭게 읽고, 시사점을 받아 볼 CSR 리포트가 절실하다. 올해 활동을 모아 내년 봄쯤 출간될 대기업들의 CSR 보고서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CSR, 혹은 지속 가능성과 관련해 기업들이 나름의 활동을 벌이지만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다. 이와 관련해 비영리 국제기구 BSR가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우선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욕망을 불어넣는 마케팅에서 탈피,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소비자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고객들이 구매의사결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어 지속 가능성을 실천토록 돕는다. 기업이 소비자와 함께 호흡해야만 CSR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기업은 ‘매우 훌륭한 존재’로 우뚝 서도록 도덕적 책무를 인정하고 대중들에 알려야 한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CEO 앤드류 위티는 “책임 있는 기업들엔 사회와 함께 가는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불편한 진실’ ‘연을 쫓는 아이’ ‘링컨’ ‘시리아나’ 등을 만든 영화사 티시펀트 미디어는 영화를 본 뒤 청중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묻는 임팩트 지표를 개발했다. 자사의 경영활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려는 취지다. 이런 지표들이 보편화하면 기업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할지 판단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진다.
마지막 조언은 ‘쉽게 풀어서 알려주라’는 것이다. 기업이 펼치는 CSR의 긍정적 임팩트를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CSR와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통합이 필요하다. IT시장 분석기관인 베르단틱스에 따르면 사내의 지속 가능성 최고책임자(CSO)와 마케팅 최고책임자(CMO)가 지속 가능성을 브랜드와 커뮤니케이션에 내재화하면 매출이 늘고, 평판은 높아져, 결국 이익이 커진다고 한다.
‘돈을 벌면서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접근과 ‘사회적 책임을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접목하는’ 접근은 꽤 거리가 멀다. 이익을 키운다는 점에서도 후자의 접근이 더 우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