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0월 15일, 경원선 기차 소리와 함께 개관한 창동역은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입니다. 일제의 병참물자를 나르는 철로에서 서울시민의 발이 된 1호선과 4호선 지하철 개통까지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현재 창동역은 지하철 환승역이자 경기 북부권 철도 이용객의 교통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하루평균 유동인구만 7만명, 배후 인구만 40만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는 비껴갈 순 없나 봅니다. 1985년 4호선 창동역사가 건립된 후 30여년을 버틴 舊 역사는 오랫동안 방치돼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역 주변은 불법 노점상 및 시설물의 난립으로 이용자의 통행 불편을 초래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죠.
'설상가상'으로 2003년부터 창동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시행된 3000억원 규모의 '창동 민자역사 사업'은 공정률 27.56%에서 멈춰 서울 북부 대표 흉물로 낙인 찍혔습니다.
초안대로라면 2008년 10월 완공 예정이었지만, 공사는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마지막 흙먼지가 날렸던 건, 지난 2010년 11월입니다. 이후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5층 골조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애초 목적과 달리 주변 슬럼화를 부추기고 있는 거죠.
이는 시행사인 창동역사㈜의 부실한 재무 상태에서 기인했습니다. 2010년엔 창동역사㈜의 임직원들의 수백억원의 불법대출과 횡령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사 중단 사태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온갖 비리에 휩싸인 창동역사㈜는 자금난에 허덕이며, 시공사인 효성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창동역사㈜ 은행으로부터 계좌와 부동산 등을 압류당해 사실상 파산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인해 사업 공중분해 위기는 물론 시공사 효성은 공사대금 수십억원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또 2005년부터 공사가 멈춰버린 2010년까지 분양임대계약을 체결한 상가 분양자 1000여명의 투자금 수백억원은 묶여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 사태의 책임은 누가 짊어질까요. 피해자인 시공사 효성과 상가 계약자협의회 측은 창동역사㈜의 문제를 코레일에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코레일이 대규모 사업 시행권을 재무상태가 부실한 창동역사㈜에 줬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역시도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 사업권 허가는 철도청의 후신인 철도공사가 준 것으로 2005년 철도공사가 코레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코레일은 '창동 민자역사 사업'에 대해 주주의 권리만 갖게 됐을 뿐 실질적인 통제권은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대 흉물인 창동 민자역사의 해결은 요원해보입니다. 수백억원의 자금이 묶여 새로운 시행사가 사업을 인수하는 건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고, 파산 상태의 창동역사㈜를 정상화 시키는 건 현실성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재까지 지어진 골조를 허물고 수백억대의 피해보상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죠.
4년간 흉물 방치의 책임소재마저 불분명한 창동 민자역사. 서울 북부의 대표 흉물이란 오명은 언제나 씻을 수 있을까요. 서울 서북부의 교통 중심지 창동역의 변신은 기약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