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한 태도는 그대로였다. 오랜만도 한참 오랜만인데 말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삼성맨의 자부심과 인터넷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강자였던 프리챌을 세운 전제완 현 에어라이브 대표의 정체성(Identity)이었다. `그대로였다`는건 이런 정체성이 여전해 보였다는 말이다.
횡령과 배임 혐의(후에 무죄로 판결)로 긴급체포되던 2002년 12월이 되기 전 만난 게 마지막이었을 터이니 12년은 족히 지났다. 약간의 서먹함을 없애고자 "대체 그 고생을 했는데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전제완 대표는 "실패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꿈을 잃지 않았던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 "자본 싸움에서 져.. 유료화는 올바른 방향이었다"
1999년 10여년을 몸바친 삼성을 나오는 전제완 대표에게 인터넷 광풍(狂風)은 봄바람과도 같았다. 세련된 디자인과 서비스로 `강남 포털`로 불리기도 했던 프리챌은 당시 강적이었던 다음 카페를 누르고 커뮤니티 강자로 우뚝 섰다. 가입자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업이 너무 빠른 속도로 잘 되자 벽도 금방 찾아왔다. 서버가 감당할 수 없는 트래픽이 발생했고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돈을 벌어야했는데 배너 광고나 아바타 판매 등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유료화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너무 앞섰던 거죠. 저는 여전히 좋은 콘텐츠나 서비스는 무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시대가 되어야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광고를 보는 것도 사실 돈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구요."
프리챌의 신화가 무너진 이유는 그럼 어떻게 분석을 하고 있을까. 전 대표는 자본 싸움에 이길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인터넷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데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했죠. 네이버는 삼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다음은 상장사라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야후는 미국 자본이다보니 프리챌은 자본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회사는 생존을 해야했고 저는 전문가 기업으로서 그룹웨어 중심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세계 시장으로 나가자는 구조를 설계하고 그런 일환으로 유료화를 실시했던 것인데,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그 유료화 때문에 무릎을 꿇게된 건 사실이죠. 모든 잘못은 그런 선택을 한 저에게 있구요."
전 대표는 벤처 기업의 `피`가 바로 `자본(돈)`이라고 강조했다.
"벤처기업들, 특히나 창업한 지 얼마 안된 벤처기업들은 유아입니다. 외부의 투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못 자라요. 정부나 투자사들이나 이 피같은 돈이 잘 돌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해도 됩니다. 제가 이번에 시작한 에어라이브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3년간 130억원을 들였습니다. 이 정도는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하죠."
구속된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GE캐피탈로부터 1000만달러 투자를 받기로 한 이후 9.11 테러가 터졌다. 투자받았으면 별 문제없지 않았느냐 하겠지만 이면 계약이 있었다. 주가가 많이 떨어져 투자사가 손해를 보게 되면 대주주가 이를 물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전 대표가 이 돈을 물어줘야 하게 됐는데 수중엔 돈이 없고, 그래서 전 대표가 갖고 있던 프리챌 지분을 은행에 맡기고 대출을 받고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저는 그렇게 벤처기업 대표들이 돈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을 `돈 단련`이라고 부르는데요, 자금이 어려워지면 사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것 때문에 무너진 벤처 CEO들이 꽤 있죠."
◇ `세풍` 이석희와의 인연.. 두 번째 고통 딛고 재도약
그렇게 출근길에 긴급체포돼 2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여주교도소를 걸어 나올 때 그에겐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만 남아있었다. 회사는 이미 솔본(전 새롬기술)에 넘어가 있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아내도 떠났다. 회사 경영을 위해 250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던 것도 그에게 고스란히 남아 경제적으로도 전과자가 되어버렸다. 두 아들도 키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친구의 호의에 아이들을 중국으로 보낸 이후 이를 악물었지만 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시련의 나날을 극복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세풍(稅風) 사건`의 주인공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그리고 프리챌 시절의 그를 믿었던 몇몇 기관 투자가들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상상 외로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자되기 때문이었다. 이 사업 아이템은 그대로 유지하고 새 법인을 미국에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에어라이브(미국 법인명은 에어 Inc.). 유아짱은 에어라이브 코리아로 전환했다. 에어라이브의 회장은 이석희 전 차장. 물심양면으로 여전히 전 대표에게 지원을 보내고 있다 한다.
"두 번째 고통이 올 때는 제가 학습이 되어있더라구요.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벤처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끈기같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란 말이 있잖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끈기있게 계속하고, 그것이 감동이 되면 다음 길이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고통으로부터 학습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네요."
◇ "벤처는 악으로 깡으로 해야"
에어라이브 서비스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서는 현재 서비스가 되고 있고, 이달 말 웹과 아이폰용 버전이 나올 예정이다.
"요즘 제2의 벤처붐이 일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벤처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아요. 안정적인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려고 하죠. 그래서 벤처쪽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또 돈도 초기 벤처기업에 잘 투자되지 않아요. 그런데 벤처가 사실 미래 산업을 인큐베이팅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부도 이걸 강조하고 있는 건 맞는 방향이라고 보구요. 젊은이들도 도전 정신을 잃지 않고 벤처에 뛰어들면 좋겠는데 사실 낭만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악으로 깡으로 해야 하는데 도전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지만 도전도 하지 않으면 못 얻거든요. 이런 인식과 문화가 형성되는 건 참 어렵더라구요."
중국에서 잘 성장한 두 아들은 모두 북경대에 진학했다. 아들들은 어려움을 겪은 아버지를 직접 보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벤처 사업에 대한 꿈도 갖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벤처하겠다고하면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저는 혼자서 하느라고 힘들었는데 제가 1세대로 잘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이 2세대 벤처를 할 때는 지금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지금하는 사업이 잘 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성공하고 이 돈이 다시 벤처 업계에 재투자되도록 하는 것이 꿈입니다."
전 대표는 현재 미국의 벤처캐피탈들과 투자 유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3000만달러 가량의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이 목표. 이걸로 3년 동안 글로벌 서비스 안착을 시도할 계획이다.
"프리챌은 제게 첫사랑이었습니다. 그 설렘을 잊을 수 없지요. 통상 첫사랑이 결혼까지 골인을 못하듯 헤어졌지만 여전히 저는 당시 가졌던 꿈을 잊지 않고 자유와 도전이라는 가치도 믿고 있습니다. 에어라이브는 그걸 실현할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인데 두 번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열정없이 사는 건 100세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