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공업계가 저가 수주에 휘청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3분기 사상 최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2% 정도 감소했다. 3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전망도 어둡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30일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3분기 창립 이후 최악의 실적을 발표했다. 이 회사의 3분기 매출은 12조4040억원, 영업손실은 무려 1조9346억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올해 누적 손실만 3조원을 초과하는 이른바 ‘실적 쇼크’에 빠졌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삼성중공업도 부진했다. 삼성중공업은 3분기 181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11.8% 감소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에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대규모 충당금이 발생, 362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업계에선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을 1114억원 전후로 예상했다. 이는 전년 동기 약 4% 하락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중공업계의 실적 부진은 국내 업체 간 저가 수주 경쟁 때문”이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로 조선부문의 수주량이 줄어들자 해양·플랜트부문 수주전에 일제히 뛰어들어 무리한 가격경쟁을 펼친 게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공사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춰 수주를 따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해양·플랜트부문이 ‘계륵’으로 전락한 셈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사우스와 슈퀘이크 등 대형 화력발전소 공사에서 공사손실충당금 5922억원을 쌓으며 77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은 이 사업을 적정 가격보다 30~40% 낮게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사 중간에 시공비가 증가하고, 공사기한 준수를 위한 추가 비용이 보태지며 실적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대다수 중공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업체들은 해양·플랜트부문에서 경험이 부족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단 수주는 해놓고 보자’는 식의 안일주의가 현재의 실적 악화를 만든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저가 수주는 국내 전 중공업체에 해당되기 때문에 큰 규모의 손실충당금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림산업 등 건설업체가 저가 수주로 따낸 중동 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대규모 손실을 낸 전철을 조선업계가 밟고 있는 것.
현대중공업은 선박 주요 발주처인 유럽이 2011년 재정위기를 겪은 이후 선박 발주가 급감하자 해양플랜트와 특수선 건조로 눈을 돌렸다.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며 해양플랜트 시장이 호황을 맞자 이 부문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저가 수주와 경험 부족으로 인한 대형공사의 지연, 비용 증가 등으로 지난 2분기 대규모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3분기에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는 발주처와 계약 변경을 통해 적자로 손실폭을 줄이는 데 급급했다.
경험 부족에 따른 시행착오도 실적 악화를 견인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부문에서도 반잠수식 시추선, 5만톤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등 경험이 부족한 특수 선박에 대한 작업 일수 증가로 공사손실충당금 4642억원을 쌓았다.
이 관계자는 “올해 누적 손실이 3조원을 넘어선 것은 현대중공업의 뇌관인 저가 수주와 방만경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도 당장 3분기는 아니더라도 4분기 혹은 내년 저가 수주로 인한 막대한 영업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이 연결 기준으로 실적을 발표하다 보니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손실을 함께 반영할 수밖에 없어 손실폭이 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통상 새 경영진이 들어서면 손실을 털고 간다는 차원에서 회계기준을 극히 보수적으로 잡는 것도 이번 기록적 손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