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고려 충선왕이 1309년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가져오기 전까지 당나라의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해 동지를 설로 지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이웃 간의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해결했는데,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고려 후기에는 충선왕이 안향의 집을 은 50근에 사서 권세가 권준에게 준 일도 있었다. 당시 은 한근의 값은 삼베 백 필과 같았는데, 이는 일반 백성의 1년 연봉에 해당했다한다. 그런데 서민들은 삼베 한 필의 저축도 없었다고 하니 개경에 집 한 채 사려면 역시나 수십년치 연봉을 한 푼도 안쓰고 모아야 할 지경이었다. 궁성에서 가까울수록 집값은 높았고 고관대작이...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1315)는 충선왕의 왕비이다. 이름은 보탑실련(寶塔實憐)이며, 원나라 진왕(晉王)의 딸이다. 1296년(충렬왕 22) 충선왕이 세자 시절 혼인하여 1298년 고려에 왔다. 그 해에 충선왕이 충렬왕의 선위(禪位)로 즉위하였다. 공주의 궁을 중화궁(中和宮), 부(府)를 숭경부(崇敬府)라 하였다.
충선왕에게는 계국공주와 혼인하기 전에 맞아들인 4명의...
조비(趙妃·생몰년 미상)는 충선왕의 왕비이다. 상원군(祥原郡·황해북도 상원군) 사람으로 아버지는 역관(譯官)으로 크게 출세한 조인규(趙仁規), 어머니는 조온려(趙溫呂)의 딸이다. 1292년(충렬왕 18)에 세자 충선왕과 혼인하였다. 충선왕은 이미 여러 명의 부인이 있었으니, 1289년 혼인한 종친 서원후(西原侯)의 딸 정비(靜妃) 왕씨, 이듬해 결혼한 남양부원군 홍규(洪奎)의...
원나라에서 귀국한 세자(뒤의 충선왕)는 왕에게 “어머니의 병이 생긴 원인을 아십니까. 이것은 사랑을 받고 질투하는 이들 때문일 것이니 그들을 문초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은 상복을 입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자는 백야단 등이 무당을 통해 저주한 사실을 조사하게 하였다. 무당과 점치는 중들이 모두 자백하여 차츰 저주한 사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려의 새로운 국왕에 오른 세자가 바로 충선왕(忠宣王)이다. 새 국왕에 즉위한 충선왕은 아마도 조금은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 과부로 있던 김씨를 아버지의 후비(后妃)로 바쳤다고 ‘고려사(高麗史)’는 전한다. 과부였던 김씨는 이렇게 해서 숙창원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미모는 독이...
남자 형제로는 최고관직을 두루 거친 권준(權準)과 권고(權皐), 충선왕의 양자가 되어 성명을 왕후(王煦)로 개명한 남동생, 최고위직을 맡았다가 훗날 딸이 원나라 황태자비가 되어 국정을 농단했던 권겸(權謙), 출가하여 최고의 승직(僧職)에 오른 종정(宗頂)이 있었다.
자매들도 남자 형제 못지않았다. 언니는 밀직우부대언(密直右副代言·정3품)을 지낸 안유충(安惟忠)...
이후에도 남편은 원에서 세자인 충선왕을 보필하였으며,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귀국하여 중책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즉위 7개월 만에 충선왕이 폐위되고 충렬왕이 복위하자 파직되었다가 1307년 복직하였다. 1308년 충선왕 복위로 연흥군(延興君)에 봉해지고, 1321년 수첨의정승(守僉議政丞)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최씨 부인은 정치적 격변기에 남편의 부재...
순비(順妃·?~1335)는 고려 충선왕의 제6비이다. 양천 허씨로, 아버지는 첨의중찬을 지낸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 어머니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최징(崔澄)의 딸이다.
허공은 처음에 정당문학(政堂文學) 윤극민(尹克敏)의 딸과 혼인하여 3남 2녀를 낳았으며, 윤 씨가 죽자 다시 최징의 딸과 재혼하여 2남 2녀를 낳았다. 따라서 순비의 형제자매는 매우 많았으며...
왕온은 옹주가 29세 때인 1310년(충선왕 2)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아들 셋과 딸 하나가 모두 어렸다. 옹주는 회안부원군(淮安府院君) 왕순(王珣), 창원부원대군(昌原府院大君) 왕우(王瑀), 낙랑군(樂浪君) 왕수(王琇)등 세 아들을 잘 가르치고 길러 모두 혼인시키고 손자도 8명이나 보았다.
그런데 하나 있는 딸이 충숙왕 대인 1314년에서 1323년 사이에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1275년 제국대장공주가 아들 충선왕을 낳았고, 정화궁주는 공주의 순산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공주가 앉을 자리[평상(平床)]가 말썽이었다. 공주는 자신의 자리가 정화궁주의 자리보다 높을 것을 요구했다. 또 정화궁주가 술을 따를 때 왕이 공주를 돌아보니, “왜 나를 흘겨보느냐, 궁주가 내 앞에 꿇어앉아서 그런 것이냐”며 화를 냈다. 연회 자리를...
1275년 원자(元子)인 충선왕을 낳았다.
공주는 매우 오만하고 탐욕스러웠으며, 왕조차 제어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공주가 흥왕사(興王寺)의 황금탑(黃金塔)을 대궐로 들여와 탑을 파괴하여 금을 쓰려고 하였다. 왕이 제지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울기만 하였다. 또 공주는 잣과 인삼을 중국 강남으로 수출하여 많은 이익을 얻었다. 이에 내시들을 각처에 보내서 물건을...
손자인 충선왕이 원나라 무종(武宗)이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우니, 1310년(충선왕 2)에 원에서 국서를 보내 그녀의 덕을 찬미함과 동시에 “그의 아들은 우리 황실의 귀한 사위이며, 더욱이 어진 손자가 있다”며 ‘고려왕비(高麗王妃)’로 추봉하였다.
순경태후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태자비로서 짧은 생을 살았다. 그러나 사후에 태후로까지 추증된 흔치 않은...
그가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이 상중에 부왕 충렬왕의 후궁을 간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우탁이 백의(白衣) 차림으로 도끼를 들고 대궐로 들어가 패륜을 멈추라고 극간(極諫)한다. 도끼로 제 마음을 찍듯, 선비의 대쪽 같은 지조를 보여주는 지부상소(持斧上疏)였다.
1876년(고종 13년) 2월, 조선 말의 대표적인 유학자 면암 최익현(1834.1.14~1907.1.1)이 도끼를 들고...
한편 임시완과 윤아가 출연하는 ‘왕은 사랑한다’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이며, 2017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MBC에서 편성을 검토 중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왕은 사랑한다’에서 임시완은 빈곤한 고려의 개혁에 힘쓰는 군주 충선왕 역을 맡았으며 윤아는 아름다움으로 두 남자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왕산 역을 맡았다.
‘왕은 사랑한다’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고려의 충렬왕부터 충선왕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매혹적인 아름다움 이면에 뜨거운 욕망과 정복욕을 품은 세자 원학과 강직한 품성, 사랑의 열정을 지닌 왕족 린의 브로맨스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왕산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윤아는 아름다움으로 두 남자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왕산 역을 맡았으며 임시완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선왕 때 소금전매제도인 각염법이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각염법은 부패한 관리들이 백성에게 제대로 소금을 내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큰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조선 태조 때 관리들의 전횡을 막는 개선된 제도가 실시됐지만 여전히 가난한 백성은 소금 한 톨 입에 대기 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다산 정약용이 소금 행정 개혁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