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諸葛亮)이 서천을 점령하려고 서촉의 장송(張松)을 끌어들이기 위해 벌인 일화를 가리켜 나온 말이다. 조조(曹操)에게 바치려다 실망해 돌아가던 장송을 조운(趙雲)이 먼저 이끌고, 유비(劉備)가 극진하게 삼일을 접대하자 장송이 서천의 지도를 바친다. 모두 제갈량의 계략에서 나왔다고 평가한 말에서 비롯했다.
☆ 시사상식 / 킬 스위치(kill switch)
잃어버린...
☆ 고사성어 / 의중여산(義重如山)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허창으로 도망가던 중 유비의 군사(軍師) 제갈량의 명으로 매복해 있던 관우를 화용도서 만났다.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치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책사 정욱이 조조에게 한 말에서 비롯했다. “관우는 아랫사람이나 약자에게는 괴롭히거나 능멸하지 아니하고, 의중여산[義重如山]한 사람이니 옛 의리를...
마속은 제갈량의 절친한 친구일 뿐 아니라 조정 중신인 마양의 아우였고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속은 주요 길목에서 진을 치고 방어하라는 제갈량의 조언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진을 쳐서 위나라에 대패하여 가정을 빼앗겨 북벌에 실패하였다. 전쟁에서 참패한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벨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군율이 살아 있음을 전군에 알리기...
제갈량(諸葛亮)이 위(魏)나라를 공격하기 전 그의 출사표(出師表) 후편에서 한 말이다. “한(漢)나라의 위업은 익주(益州) 같은 변경에 안주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위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고 왕업을 중원에 확립해야 합니다. 신은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죽고 나서야 그만둔다[死而後已]는 각오로 출정합니다.”
☆ 시사상식 / 시뇨리지...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남만을 정복하러 갈 때 마속(馬謖)이 한 말이다. “용병의 대원칙은 적의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심리전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전투는 하책입니다[夫用兵之道 攻心爲上 攻城爲下 心戰爲上 兵戰爲下].그러므로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마속은 촉이 남쪽의 소수민족...
촉(蜀)나라 마속(馬謖)의 재주가 남달랐고, 특히 군사 계략을 세우는 데 뛰어나 제갈량(諸葛亮)이 총애했다. 그러나 유비(劉備)는 마속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죽음을 앞둔 유비는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한 말.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니 크게 쓰지 말도록 하고, 그대가 잘 살피시오[馬謖言過其實 不可大用 君其察之].” 위(魏)나라가 가정(街亭)을 공격할...
너무도 유명한 제갈량의 읍참마속(泣斬馬謖). 촉나라 건흥 5년(227년) 3월. 제갈량은 위나라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마속에게 산기슭의 도로를 지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 역공할 의도로 산 위에 진을 쳤다. 하지만, 마속은 포위망을 뚫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위나라 장수인 장합에게 참패를 당했다.
이 사실을 안 제갈량은 마속을 보낸 것을 크게...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우리끼리 내부 권력에 암투할 시간과 에너지는 없다”며 “그럴 시간과 에너지로 동료 시민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들어 설명하고 상대 당의 왜곡·선동에 맞서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에서 궁중 암투나 합종연횡하듯이 사극을 찍고 삼국지 정치를 하지 말자”며 “사극은 어차피 늘 최수종 것이고, 제갈량은 결국 졌다”고 말했다.
제갈량(諸葛亮)이 총애한 마속(馬謖)을 탐탁지 않게 여긴 유비(劉備)가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하면서 한 말에서 유래했다. 유비는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니 크게 쓰지 말도록 하고, 그대가 잘 살피시오[馬謖 言過其實 不可大用 君其察之]”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유비가 죽은 뒤, 위(魏)의 공격에 맞서 제갈량이 그에게 수비 군령을 내렸으나 어겨 패했다....
삼국지에서도 의형제 관우, 장비와 나라를 다스리던 유비가 위기를 느끼자 제갈량이라는 인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산업부터 중기 제조업까지 여기저기, 너도나도 인재를 입이 닳도록 외치는 것을 보니 위기가 오긴 온 모양이다. 인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인재(人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
유비(劉備)를 도와 촉나라를 세워 기초를 다진 제갈량(諸葛亮)이 그가 죽자 촉의 부흥을 위해 위나라 공격에 나서며 뒤를 이은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쓴 말. “선제께서는 창업을 이루던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천하는 위, 오, 촉의 셋으로 나뉘고, 촉의 도읍 익주는 쇠약해졌으니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처한 때입니다...
유선은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사망하자 주색에 빠져 정사를 포기했고 위나라가 공격하자 스스로 항복했다. 사람들은 덕으로 천하의 인심을 얻은 아버지 유비의 유지를 저버린 철부지 자식 유선을 ‘호부견자’라고 불렀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 훌륭하지 않은 자식이 없다는 호부 무견자(虎父 無犬子)라는 옛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출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삼국전투기 / 최훈 / 네이버 웹툰(완결·부분 유료)
삼국지를 다룬 웹툰으로, 정사·연의 삼국지 내 주요 전투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사와 연의를 적절히 섞어 자신만의 해석으로 그려냈으며, ‘제갈량 사후는 대충 다룬다’는 삼국지 관련 창작물 클리셰를 끊어내고 사마염의 삼국통일까지 상세히 다뤄 호평을 받았다.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나온다. 유비(劉備)가 사마휘(司馬徽)에게 시국에 관해 묻자 그가 답한 말에서 유래했다. “글만 읽는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은 이곳에 계신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가 잘 알지요.”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량(諸葛亮)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을 가리킨다.
☆시사상식/패스트패션(Fast Fashion)
생산에서...
1945~
☆ 고사성어 / 양유건괵(亮遺巾幗)
제갈량이 머릿수건을 보낸다는 말로,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비하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이른다. ‘건괵’은 부녀자의 두건, 머리 장식으로 아낙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서(晉書) 선제기(宣帝紀)에 나온다. 촉(蜀)나라 제갈량(諸葛亮)이 10만 병력으로 북벌(北伐)에 나서 위수(渭水) 남쪽 오장원(五丈原)에 주둔하며 수차례 싸움을...
☆ 제갈량(諸葛亮) 명언
“욕심을 없애고 마음이 정갈해야 뜻을 맑게 가질 수 있으며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해야 원하는 바를 이룬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자는 공명(孔明). 그는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해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했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아들 유선(劉禪)을...
그러면서 “이 대표가 비닐주머니를 주셨다고 했는데 나는 비단주머니를 받았다”며 “새로운 캠프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주머니’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를 호위하는 조자룡에게 “어려울 때 꺼내보라”며 3개의 비단주머니를 줬다는 이야기를 빗댄 표현이다.
촉나라 제갈량(諸葛亮)은 마속의 재능을 아껴 유비(劉備)의 유언을 저버리면서까지 중용했으나, 그가 가정(街亭)전투에서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워 패하자 그를 아끼는 마음을 누르고 군율에 따라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
☆ 시사상식 / 리터루(Returoo)족
‘돌아가다(return)’와 ‘캥거루(kangaroo)족’의 합성어다. 결혼 후 독립했다가...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됐다.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풀려난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 시사상식 / 펀...
관은병은 장비에게 특히 귀여움을 받았으며, 관우와 관평이 전사한 후,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잠겼으나 제갈량의 꾸중을 듣고 기운을 차려 조운을 스승 삼아 무예를 연마했으며, 이후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동행했다고 전해진다.
관은병 초월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초월 스킬 ‘빙혼룡조’를 보유하게 되며, 스킬 사용 시 냉기를 휘둘러 주위의 적을 느리게 하고 1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