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이 작두날 같은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
내가 한 철인제 북천 조용한 마을에 살며한 사미승을 알고 지냈는데어느 해 누군가 슬피 울어도 환한 유월그 사미는 뽕나무에 올라가 오디를 따고동네 처자는 치마폭에다 그걸 받는 걸 보았다그들이 주고받는 말은 바람이 다 집어먹고흰 웃음소리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북천 물소리가 싣고 가다가돌멩이처럼 뒤돌아보고는 했다아무 하늘에서나 햇구름이 피던 그날은살다가 헤어
함흥냉면
함흥은 없고 냉면만 남았다
함경남도 바닷가
집은 멀고 고향 잃은 음식이다
그해 겨울 눈 내리는 흥남에서
LST 타고 떠나온 뒤
함흥냉면에는 함흥이 없고
메밀이 들어 있다
못 가는 북방의 냉기처럼 서늘한
더운 날엔 혀가 기쁘라고
굵은 고추무거리에
푸덕한 명태 버무려 회를 얹은
잇몸을 간질이는 면발을 끊어내며
혀에 척척 감아
철쭉이 한창이다. 오월이 온다. 그간 여야가 바뀌고 지진이 지구를 흔들어도 일상은 변함없이 반복된다. 하늘을 날던 새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종일 땅을 파헤치던 닭도 꿈을 위하여 횃대에 오른다. 저녁이다. 가로등이 켜지는 골목길로 붕어빵을 사들고 귀가하는 아버지가 있고 직장인들은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시간이다.
저녁이
봄날 옛집에 가다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 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수액은 나무의 피 같은 것이다. 언 땅에서 봄을 기다리던 고로쇠나무는 입춘이 지나면 땅속의 심장인 뿌리를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한다. 나날이 달라지는 햇빛 속에서 새싹을 준비하는 가지들에게 물을 날라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수만 지나도 사람들은 그의 몸 여기저기 구멍을 내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박아 수액을 받아내기 시작한다. 옛날 사람들은 속병에 좋다
“역사가는 승리의 이야기를 쓰지만 작가는 패자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문학작품은 성공한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하거나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승자와 패자의 의미는 대단히 넓은 것이기도 하겠으나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 온 경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