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아름다운 건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 밥상 앞에 앉아 서로를 보듬는 소소한 행복 때문이다. 무엇을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감싸주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저녁을 빼앗기거나 가족이 거의 해체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게 모두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니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역설일 수밖에 없다.
어느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민생경제론을 펴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의 수사적 낭만성이나 계급성 때문이었던지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집을 나서면 우리는 상처받기 일쑤다. 갑에게서, 명품에게서, 심지어 국가에까지 우롱당한다. 삶은 너무 노출되어 있고 낱낱이 환하다. 그래서 치유와 휴식의 느슨함이 필요하고 거기가 바로 우리들의 저녁이다. 마치 짐승이 새끼의 상처를 핥아주듯 커다란 어둠에 몸을 맡기고 쉬어야 하는데 그 저녁으로 돌아가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여하튼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새로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