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팔경으로 손꼽히는 이곳의 절경은 영덕에 유배를 왔던 고산 윤선도가 머물며 시를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블루로드의 북쪽 출발점이자 영덕역사의 모티브가 된 고래불해수욕장은 고려시대 목은 이색이 고래가 뛰노는 곳이라 하여 명명, 송림, 청정해변,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명사 20리로 불리는 곳이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목은 이색이 그리워한 맛
공자께서는 “군자는 도를 추구하지 먹을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君子謀道不謀食, ‘논어’]라고 하셨지만, 군자도 맛있는 것 앞에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외가에서 태어난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은 ‘잔생(殘生)’이란 시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입과 배만 생각하니[殘生唯口腹]/먹을 것만...
공민왕 때 최고의 지위에 있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조차 “신은 지금 병석에 누워 국사를 맡았는데/쌀 구걸로 해마다 생활 계책 졸렬하여/묽은 죽에 얼굴이 환히 비치는 지경이라/배고파 우는 노복(奴僕)들을 차마 보기 어렵네”라는 등의 가난과 관련한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반면 평량군부인과 동 시대를 살았던 권세가 이자겸(李資謙)의 집에는 “뇌물이 공공연히...
목은 이색의 ‘군수 이공(李公)의 방문에 감사하며’[謝郡守李公來訪]라는 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인인 내가 꽃을 마주하여 차를 마시니 이 곧 살풍경이라, 천치 같은 늙은이 이 지경 되었으니 어찌할꼬.”[主人啜茶殺風景 老癡至此何爲哉] 꽃을 마주하여 차를 마시는 게 왜 살풍경인가. 차 대신 술을 마시라는 건지, 채신머리없이 후루룩 마시는 게 살풍경이라는...
이번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시 ‘유항(柳巷)에게 증정하다’[呈柳巷]를 보자. 유항은 한수(韓脩·1333~1384)의 호다. “버들골에 사는 우리 두 노인/평생 조용하고 고적한 생활/봄바람 불면 뜨락의 꽃에 취하고/무더울 땐 누대에서 비를 읊는다오/견우와 직녀가 은하에서 반짝이고/서늘한 기운 집에 또 가득한 이때/중추절에는 달을 기리고/중구일에는 국화를...
목은 이색은 48행이나 되는 시 자송사(自訟辭)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네 몸 왜소하고 못생겼음이여/남 보기에 곧 넘어질 것 같으리/보는 게 짧은 데다 듣는 것도 어두워/남의 소리 들으려면 좌우를 돌아보네”[汝之軀矮而陋兮 人視之若將仆也 視旣短而聽又瑩兮 中人聲而左右顧也] 중간 부분에 “오직 나만 전도낭패함이여/선을 주로 삼는 순일함을 몰랐어라/오직...
목은 이색(1328∼1396)의 시에도 이 말이 나온다. ‘伏想郊宮 吟成一首’(삼가 교외의 행궁을 생각하며 한 수 지어 읊다)라는 제목이다. “농한기에 사냥으로 무예를 닦게 함은/성상께서 사위를 생각하심이니/지금은 혜성이 나와 땅을 환히 비춤에/멧돼지도 살던 숲을 멀리 떠나는 때임에랴/하지만 뭇사람이 삼구의 법도를 기뻐해도/이 신하는 오언시를 지어 올리나니...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도 ‘술회’(述懷)라는 시에서 엽등이 없었는지 반성했다. “처음 급제해선 삼관에 종사하고/백관에 끼어 벼슬했는데/공부는 끝내 엽등을 하고/풍채는 남의 위에 오르려 했네/망령되이 선업 잇기를 생각하여/이 몸 이끌어 대조에 세웠노니/하늘의 명이 있다 하나/다만 남들이 조롱할까 염려되누나”[釋褐游三館 參官側百寮 功夫終躐等...
돌아간 것은 눈이 그쳐 흥이 다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이 일에서 생긴 성어가 산음승흥(山陰乘興), 흥이 일어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이다. 그 이후 시에 섬계를 넣거나 눈 속에 친구를 찾아가는 고사인물화를 그린 사람들이 많다. 섬계를 아호로 지은 이도 있다. 목은 이색도 벼슬에 얽매인 자신을 벼슬 없는 친구가 그리워 찾아간 왕휘지에 비유한 시를 남겼다.
고려시대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 중 한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처인 정신택주(貞愼宅主, 1331-1394, 정신택주는 조선시대의 정경부인에 해당하는 부인에게 주는 일종의 관직) 권씨를 통해 고려시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자.
이색은 14세 때, 11세의 당대 명문대가인 안동 권씨 권중달의 딸과 결혼했다. 이색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