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이색이 그리워한 맛
대게의 본고장은 어디인가
허균(許筠, 1569~1618) 역시 16, 17세기의 별미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대게[紫蟹]의 맛을 상찬했다. 허균은 전라도 함열로 유배를 가서 그때까지 맛본 맛있는 음식을 추억하며 “삼척에서 나는 것은 크기가 강아지만하여 그 다리가 큰 대[竹]만하다. 맛이 달고 포(脯)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입맛을 다셨던 것이다. 허균이 삼척부사를 지냈고, 때문에 그 지역에서 잡힌 대게 중에서도 가장 크고 맛있는 녀석을 드셨을 것이니, 그렇게 말했을 법도 하다.
한자로 ‘붉은 게[紫蟹]’로 표기한 대게는 지금의 대게와 홍게를 모두 포함한 명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예부터 대게의 본고장은 어디였을까?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를 보면 대게의 생산지는 영덕, 영해, 평해, 길주, 명천, 북청, 함흥, 경흥, 단천, 홍원 등지였다. 이는 영덕 이북 동해 연안에서 대게가 잡혔던 것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즉 경북과 강원도, 함경도 연안에서 두루 잡혔던 것이 바로 대게였다.
세종 대에는 함길도 도절제사가 “국왕이나 황제에게 진헌(進獻)할 동해의 붉은 대게인 자해(紫蟹)·미역인 감곽(甘藿) 등 물건이 모두 경원(慶源) 경내에서 생산되지 않으므로…(중략)…경원·길주 이남의 각 고을과 강원도 등 각 도의 생산되는 곳에 나누어 정하게 하소서(1431년 4월 28일 세종실록)”라는 계(啓)를 올리고 세종이 이를 허락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삼척이나 울진 영덕 등지에서 각각의 대게를 홍보하면서 자신들 고장의 것을 최고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 같은 대게여서 어느 곳의 대게가 진짜이며 상품(上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수율(대게의 살이 들어 있는 정도)이 좋고 싱싱하면 다 맛있는 대게인 것이다. 실제로 대게 위판량을 보면 영덕의 축산항과 강구항, 포항의 구룡포항, 울진의 죽변항과 후포항 등이 상위 순위에 올라 있다. 그런데도 일반적으로 영덕대게가 대게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일제 강점기에 영덕의 강구항이 어항으로 크게 번성했고 대게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영덕의 강구항은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오십천의 바다쪽 입구여서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가진 항구다. 1920년대 후반에 수산가공 공장이 들어서 통조림을 생산했으니, 그 무렵부터 어항으로서의 명성이 자자했고, 1960년대 후반 대게의 대일 수출 물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강구항의 대게가 영덕대게라는 명칭으로 일반인들에게 퍼져나갔던 것이다.
“화려한 빛깔/얕은 듯하면서도 씹을수록/깊어가는 독특한 맛으로/미식가들의 사랑을/독차지하고 있는 영덕게//그러나 영덕게는 섭섭하게도/바닷가가 아니고서는/그 참맛을 맛보기가/어렵다고 합니다.”
한 기업이 1977년 냉장고 광고를 하면서 신문에 낸 광고 카피다. 이 카피를 보면 1978년에 이미 영덕게는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현지가 아니면 참맛을 보기가 어렵다는 사실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자사의 냉장고를 사서 대게를 잘 보관해 그 참맛을 보라는 것인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귀엽고도 재미있는 광고이다. 어쨌거나 이 시절부터 영덕게는 전국적인 명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 홍게는 수심이 깊은 지역에서 잡히기에 통발로 작업을 하고 그보다 얕은 바다에서 잡히는 대게는 자망어선이 어획을 한단다. 영덕대게 축제 추진위원장이자 대게전문점 ‘씨월드(054-733-9888)’를 운영하는 이춘국 씨를 만났다. 대게가 탈각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 그는 강구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대게 전문가이다.
“대게는 언제가 가장 맛있나요?”라고 먼저 질문을 던진다. 이춘국 씨는 “대게가 보름달이 뜨면 맛이 없다느니 하는 말은 다 엉터리예요. 대게는 11월부터 조업을 해서 이듬해 5월까지 잡습니다. 벌써 일부는 산란을 시작했는데 5월부터 10월까지는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금어기지요. 물론 1년 내내 ‘빵게’라고도 부르는 암컷은 못 잡게 되어 있습니다. 잡을 수 있을 때 잡히는 대게는 언제나 맛있습니다. 다만 수율이 문제지요. 대게는 전 생애 동안 6번 정도 탈각(脫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 탈각할 때마다 보통 2㎝ 정도 커집니다. 탈각을 하면 몸에 살이 없어 물렁물렁해집니다. 이런 게를 물게라고 합니다. 이 물게가 살이 차면 탈각 직전 완전히 살이 들어차는데, 이게 바로 맛이 가장 좋은 박달게입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살이 꽉 찬 게는 맛있는 거고 살이 없는 게는 맛이 없는 거지요. 자망 어선이 한 번 조업을 나가 잡는 게 중에서 박달게에 해당하는 것이 10% 정도 됩니다. 이 게에는 영덕군이 보증하는 가락지를 끼우죠. 홍게와 영덕게는 쉽게 구분이 되고 수입산 러시아 대게는 표면에 흰색 딱정이 같은 게 많아요. 표면이 좀 깨끗한 것이 국산 게입니다.”
이춘국 씨는 대게 축제 기간이라고 특별히 더 맛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다만 한겨울을 피해 날이 따뜻해지는 봄의 초입, 군의 다른 행사와 겹치지 않게 날을 잡다보면 대개 3월 말 정도가 축제일로 잡힌단다. 강구항의 대게 축제에는 해마다 약 7만,8만 명의 외지인이 와서 대게 맛도 보고 각종 축제 행사에 참가해 한나절을 즐긴다. 탁 터진 동해바다 풍경과 시원한 봄 바닷바람을 즐기며. 몇몇 궁금증이 해결되자 드디어 영덕게를 맛본다.
게만 보면 늘 허겁지겁 먹었는데 게가 쌓여 있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장으로 비빈 밥과 게 찌개로 마감을 한다.
영덕대게로를 달려 이색의 고향까지
배가 부르면 눈이 호사를 해야 한다. 강구에서 북으로 달려 축산으로 이르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온몸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펼쳐지는 망망한 동해. 옹기종기 널려 있는 바위와 백사장. 전형적인 동해의 풍경이다.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중간 중간 횟집이며 영덕게를 파는 집도 널려 있다. 여름이라면 몸을 담그고 싶은 예쁜 해수욕장도 많다.
어릴 때 맛본 음식 맛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김치 한 조각, 된장 한 숟갈이 그러할진대 영덕게나 되니 이색의 그리움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이색의 생가 터를 돌아보고 나서도 입과 손가락에 비릿한 게 맛의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