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4월 4일 엽등월급(躐等越級)
등급을 걸러 뛰어 오름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옛사람들은 단계를 밟지 않고 건너뛰는 공부를 허탄(虛誕)하다고 경계했다. ‘맹자’ 이루하편(離婁下篇)에 나오는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은 중요한 학문 지침이었다. “샘이 깊은 물은 퐁퐁 솟아올라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간다.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야 흘러가 바다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이렇게 꾸준하고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고 단계와 등급을 건너뛰어 오르는 게 엽등(獵等)이다.
가르치는 이들은 학생들이 엽등하지 않게 하고 서로 장점을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절차를 뛰어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서로 장점을 보고 배워 선해지게 하는 것을 마라 한다”[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고 했다.주희(朱熹·1130~1200)는 ‘하학하여 상달한다’[下學而上達]는 공자의 말을 ‘아래로 비근한 인간사를 배워 위로 심오한 천리에 통달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공자는 하학~상달의 순서를 따름으로써 엽등을 좋아하는 폐단에 빠지지 말도록 가르쳤다. 주희는 초목이 뿌리-줄기-잎의 순서로 자라듯 하학에서 상달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는 게 천리라고 말했다. 기초가 부실한 월반은 좋을 게 없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도 ‘술회’(述懷)라는 시에서 엽등이 없었는지 반성했다. “처음 급제해선 삼관에 종사하고/백관에 끼어 벼슬했는데/공부는 끝내 엽등을 하고/풍채는 남의 위에 오르려 했네/망령되이 선업 잇기를 생각하여/이 몸 이끌어 대조에 세웠노니/하늘의 명이 있다 하나/다만 남들이 조롱할까 염려되누나”[釋褐游三館 參官側百寮 功夫終躐等 風彩欲揚翹 妄意承先業 將身立大朝 雖然有天命 只恐衆相嘲]
엽등을 경계하라는 것은 스승이나 선배가 후학들에게 흔히 해주는 말이다. 신학기가 한 달이 지난 지금 자신의 공부를 돌아보면 좋겠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