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구텐베르크에 밀려 인정받지 못하다가 1972년 5월 29일 프랑스 파리 ‘세계 도서의 해’ 기념전시회에서 공개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공인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세계인은 인류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꼽는다. 그럴 만하다.
혁신적 발명에 그치지 않고 대중적 수요(산업혁명 등)를...
디자이너, 번역가, 인쇄업자, 에이전트를 비롯해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출판 역시 협업의 과정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금정연 작가는 이 책에 대해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완벽한 안내서"라고 평가했다.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 현직 편집자 모두가 읽어도 유용한 책이다.
1455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했다. 가톨릭 교회의 문서를 인쇄하는 일을 했는데, 자금이 부족해 사업가 요한 푸스트의 돈을 빌려 거대한 두 권짜리 성서를 인쇄했다. 그런데 단 200권을 인쇄한 후 돈이 바닥나 버렸다.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없게 된 구텐베르크는 푸스트에게 인쇄기를 빼앗겼다. 막상 큰돈을 번 것은 영업망을 구축해 독일과 프랑스...
세종 시대 과학유산 흔적 대규모 발굴 '처음'…구텐베르크보다 앞서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유물은 세종 때 제작된 금속활자다. 한자 활자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이 나왔다. 조선 전기의 다양한 금속활자가 한곳에서 발견된 첫 사례다.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다미르 쿠센 주한크로아티아 대사는 이날 "크로아티아는 1440년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 인쇄 보존을 해온 몇 안 되는 슬라브 국가 중 하나"라고 자부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국립중앙도서관과 MOU를 체결한 크로아티아 국립도서관이 제공한 글라골 문자로 써진 영인본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특히 로마 미사경본(Misal po zakonu rimskoga dvora...
지금,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 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이 심화하면서 보호주의와 포퓰리즘이 거세지고 있다.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 마인츠의 필립 함스 교수는 “무역전쟁이라는 큰 위험에 직면해, 제조업을 축으로 하는 기존의 산업은 해외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중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억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심체요절'이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의 뿌리가 됐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금속활자, 압축 인쇄기, 용지를 기록해 '42행 성서'를 인쇄한 것과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소설은 '직지'와 구텐베르크 활자본 사이에...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구술 문화 시대에서 문자 문화 시대를 거쳐 구텐베르크 이후 시대로 넘어오면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읽는 뇌’로 진화되었다. 뇌가 읽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회로가 바뀌고, 배선과 그 구조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지속적인 읽기는 뇌의 인지적, 언어학적, 생리학적 변화를 가져오고, 결국은 뇌를 돌이킬 수 없는 ‘읽는 뇌’로 바꾼다는 것이다. 울프는...
1452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출판사를 열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독학으로 다양한 지식을 얻는 시대를 열었다. 포르투갈의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40년 동안 전쟁이 없는 평화 시대로 접어들고, 법률, 회계, 신용거래, 보험업의 발달로 상업이...
1970년생인 박 전무는 재독 2세 교포로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됐다. 독일 마인츠대학병원과 뮌헨 LMU대학병원에서 각각 마취과 의사와 산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했다.
이후 독일 제약사 세로노,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독일GSK 등에서 영업 등 마케팅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2010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2013년 독일GSK 대표도 지냈으며 최근에는...
상황이 이렇자 독일의 칼 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 전 경제 장관은 “미국과 독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역과 일자리다. 미국 고위 관료들에 따르면 미국의 대(對)독일 무역 적자는 2016년 650억 달러(약 73조5150억 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관측된다. 동시에 독일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한 수출은 지난 1월에 작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술 덕분에 ‘95개의 논제’가 바로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이것이 바로 유럽을 뒤흔든 종교개혁의 시발점이다.
이단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1521년 1월 레오 10세가 루터를 파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히려 루터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혁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게 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는 자신을...
유 전 의원은 독일로 떠나 마인츠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교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등을 저술했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대표집행위원을 맡으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고, 2003년 고양시 덕양구에 출마해 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여정부에서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이 유용한 혁신품의 가치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1440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독서가 일반인의 삶에 퍼지면서부터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눈이 나쁜 원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안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깨닫지...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이 2011년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밝혀지자 즉각 사과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은 2012년 20년 전(1992년) 쓴 박사논문이 표절판정이 나자 대통령직을 사임한 것과 참 많이 다르지요.
아 생각해보니 궤변 아닌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반성한 사람도 있었군요. “논문 표절은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한...
팔 슈미트 전 헝가리 대통령과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독일 전 국방장관은 논문 표절 사실이 밝혀지면서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논문 표절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민의 불신을 막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죠.
국회의원과 IOC 선수위원은 본인의 의지만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정식종목 결정에 참여하는 등...
지난 2011년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은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실이 밝혀지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사학위 박탈과 함께 말이다.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 역시 1992년 쓴 박사논문이 표절판정을 받으면서 지난해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대중은 지난 3월 자신의 석사논문 표절의혹 보도가 나오자 자신의 논문의 표절은 잘못된...
2011년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이 박사 학위 논문 표절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사학위 박탈과 함께.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 어땠나. 지난해 그 역시 1992년 쓴 박사논문이 표절판정을 받으면서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논문 표절을 한 우리 공직자나 교수들과 너무 다른 태도다.
이런 상황에서 김혜수는 언론의...
코베르 라즐로 국회 의장은 후임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대통령직을 대행한다.
슈미트 대통령은 2010년 총선에서 압승한 피데스 당의 총수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지명을 받아 대통령직을 맡았다.
앞서 독일의 카를 테오도르 구텐베르크 국방장관도 박사 논문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지난달 사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사 말미에 “한국 경제 모델의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한국이 성취한 성과나 지속적인 발전가능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잡지는 “한국이 구텐베르크보다 2세기 앞서 금속활자를 개발했던 것처럼 내재된 혁신 자질을 끌어낸다면 앞날이 더욱 밝을 것”이라고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