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 최불암, 그가 말하는 드라마, 연기 그리고 인생[배국남이 만난 스타]
한낮의 햇볕이 이제 뜨거움이 아닌 따스함으로 다가오는 가을의 중간이다. 그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한 스타를 만났다.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소리를 지른다. 환호다. 하지만 그 환호의 대상은 팬덤이 강한 아이돌 스타도 트렌드를 이끄는 톱스타도 아니다. 바로 국민 아버지로 불리는 최불암(74)이다.
“연기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직업이야. 이번 드라마(‘기분좋은날’) 하면서 나 역시 아버지, 할아버지로서의 내 자신을 돌아봤고 극중 캐릭터처럼 파킨슨병으로 육체가 마비되고 치매까지 걸린 아내를 끝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며 보살필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 나에게 여운이 많이 남는 드라마야.”
착한 드라마로 시청자의 가슴과 눈을 적신 SBS 주말극 ‘기분 좋은 날’을 종영한 직후 만난 최불암은 여전히 드라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쉬움도 많다고 했다.
출생의 비밀등 구태의연한 설정, 개연성 없는 우연한 사건 남발, 극단적인 캐릭터의 홍수 등 막장 드라마로 비판받은 ‘왔다! 장보리’가 30~40%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장방송을 한 반면 우리가 정작 소중히 간직해야하는 의미와 가치들이 상실돼가는 것을 두 가족을 통해 잔잔하게 보여준 ‘기분 좋은 날’은 시청률 4~8%를 보여 조기 종영했다.
“뭐, 가슴이 너무 아프지. 드라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주잖아. 좋은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방송사도, 제작진도 그리고 시청자도 노력해야할 것 같아.”
근래 들어 현실에서나 방송에서 아버지, 할아버지의 자리와 앞으로 지향해야할 모습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는 최불암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점차 아버지의 자리나 할아버지 등 어른의 자리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청소년 등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에서 웃음거리 소재가 아닌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롤모델로서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담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TV밖에서도 최불암은 우리 사회의 미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일을 오랫동안 해왔고 최근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제로캠프’을 열었다. “우리의 미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힘들어하는데 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일을 하는 것이다.”
역시 최불암은 TV속에서나 밖에서 어른이다. ‘국민배우’ 라는 단어조차 그를 다 형용하지 못할 만큼 50여년 동안 최불암은 대중에게 연기자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루에도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상황에서 최불암은 50여년 한결같이 빛을 발하는 거성(巨星)이었다. 그가 발산하는 연기자로서의 빛을 보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은 용기를 얻고, 좌절에 빠진 사람은 위안을 받으며, 절망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불암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닌 삶의 좌표구실을 하고 있다.
“중앙고 2학년때부터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했으니 연기자로 살아온 지가 50여년이 넘었구먼. 수많은 사람들을 인생을 내 것처럼 살아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했다면 나야 너무나 큰 보람이지”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50여년을 연기했기에, 그것도 의미와 가치, 감동을 주는 연기자로 시청자와 관객곁을 지켰기에 최불암은 어린이에서부터 장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양으로 읽힌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빼어난 할아버지 연기자 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전령사로서, 그리고 중장년층에게는 우리들의 영원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그리고 노년층에게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들의 삶을 잘 구현해주는 원로 연기자로 다가간다.
TV 연기자로 첫 선을 보인 KBS ‘수양대군’(1967년) MBC 최초의 일일 드라마 ‘개구리 남편’(1969년) 등 50여년 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 출연한 최불암은 그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장기간 방송됐던‘전원일기’(1980~2002년)와 ‘수사반장’(1971~1989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지. 두 작품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야. 두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었지.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말하는 것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뭉클해.”
서울 대방동 이투데이 1층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린이에서부터 중장년의 사람까지 최불암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거나 악수를 청하며 사진촬영을 요청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 같이 반가운 표정이다. 최불암의 연기자로서의 존재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너무나 고맙고 행복하지. 연기자로서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남은 삶도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줄수 있는 연기를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지.”
여생도 연기자로서 치열하게 살겠다는 대한민국 연기자 최불암, 그가 연기자로 존재했던만큼 한국 대중문화사는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졌다. 앞으로 펼칠 그의 연기의 문양 역시 한국 드라마사에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연기자 최불암에게 여전히 기대를 갖는 이유다.